[고운 만남] HS애드 이현종 ECD를 만나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야말로 마음을 훔칩니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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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만남] HS애드 이현종 ECD를 만나다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야말로 마음을 훔칩니다”

작성일2015-04-03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광고가 있습니다. “엘라스틴 했어요.”라며 머리를 흩날리던 전지현, ‘LG 명화 캠페인’에서 뛰어오르던 드가의 발레리나, ‘엄마는 외계인’이라며 아빠와 아이가 밤하늘을 바라보던 아이스크림 광고. 얼핏 들어도 잔상이 그려지는 이 흥행 광고들은, 실은 모두 같은 사람인 HS애드 이현종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하 ECD)의 작품입니다.

대한민국광고상 대상,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 대상, 뉴욕 페스티벌 은상 등 국내외 숱한 광고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국제 광고제 심사위원까지 역임한 이현종 ECD. 지난 25년간 그가 훔친 것은 ‘상’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올해 출간된 그의 책 제목은 ‘심(心)스틸러’. 책은 그의 짧지 않은 광고인생을 담아낸 일종의 회고록입니다. 사소하지만 특별한 사인(sign)들이 사람의 마음을 훔친다는 그의 광고지론을 만나러 ‘고운 만남’이 직접 찾아갔습니다.

HS애드 이현종 ECD_1HS애드 이현종 대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광고의 본질인 아이디어를 결정하는 총괄자‘라고 말한다.

 눈 위를 살짝 가린 머리카락, 블랙 폴라티 위로 걸쳐진 클래식한 안경이 상대방을 긴장하게 합니다. 작업실 뒤편으로 보이는 빽빽한 책꽂이는 강한 취향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주관이 뚜렷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어색하게 첫 인사를 건넸습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본 사람이야 유사 이래 숱했지만, 그것이 위대한 사인이었음을 알아차린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저서 ‘심(心)스틸러’에서 광고제작자의 시선을 절묘하게 표현하셨더라고요.”

 “그리 대단한 책도 아닌데 뭘요.(웃음) 인생이 좀 수동적이라, 주위에서 하라고 밀어붙이는 걸 2년을 버티다 마지막에 와서 썼어요. 원래는 은퇴 후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좀 일찍 쓰게 됐네. 그게 컸던 것 같아요. 아버님이 몸이 좀 안 좋아지셨는데, 뭔가 드리고 싶어도 드릴 게 없는 거에요. 문득 내가 쓴 책을 선물로 드리고 싶었어요.” 

수동적이라는 그의 표현은 겸양의 표시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닌 듯했습니다. 실제로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인생, 우연에 맡기는 인생이 좋다는 그는, 무언가 대단한 목표를 정해놓고 치열하게 달려가는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어쩌면 우연을 사랑한다는 말은, 자신의 일과 인생을 그만큼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누구나 있죠. 그래도 광고인이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어요. 뭘 만들어내는 지금의 일이 꽤 재밌으니까. 사람들은 광고를 3차 산업이라고 하는데 난 근본적으로 1차 산업이라 생각해요. 농사도 1차 산업이고, 글도 1차 산업이고. 무언가 내 의지로 계획해서 결과물을 내 손으로 보죠. 전모를 모르고 부분에서 행해 들어가는 일들은 대개 상실감이 있을 거 같아요. 내가 뭘 했는지 싶을 것 같고. 그런 면에선 만족합니다.”

심스틸러   올해 1월 출간된 이현종 ECD의 신간, ‘심(心)스틸러’.
책 가운데로 그어진 한 줄의 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음(心)이 좁은 틈을 뚫고 마음에 꽂혔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가 유명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까지 걸어온 인생,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던 결코 가볍지 않은 통찰들이 책 속 문장 하나 하나에 박혀있습니다. 특히 베스킨라빈스, 올림푸스, LG 명화 캠페인, LG 다문화 캠페인 등 그의 광고 인생에서 굵직했던 필모그래피들의 뒷 얘기도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사실 이현종 ECD는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하지만, 정작 그가 진행한 광고 캠페인들은 작정하고 해도 감당하기 힘든 큰 프로젝트들이었습니다. 가령 LG의 제품으로 악기를 만들어 프라하 국립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협연하도록 했던 ‘LG그룹 광고 오케스트라’ 편은 체코까지 무작정 날아가 섭외한 겁 없는 도전이었습니다. 또 비교적 최근에 촬영된 LG 올레드 TV 광고는 파비앙이란 스위스의 유명 사진 예술가와 함께 누구도 도전해보지 않은 5천 프레임으로 소금 촬영을 시도한 것이었습니다.

LG 감사 콘서트 CF 촬영 현장LG 감사 콘서트 CF 촬영 현장

LG 올레드 TV 광고. 스위스 아티스트 파비앙과 실제 소금으로 작업했다.

세상에 없던 꿈의 화질. 세계 최초 LG OLED TV 출시. 4.5mm 초슬림. 꿈의 TV LG OLED. 화질은 역시 LG.

 “왜,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러잖아요. 운이 좋았던 거죠. 올레드TV 광고 같은 경우는 광고의 출발 자체가 파비앙이란 아티스트의 사진 작업을 보고부터였어요. 본래 CG나 합성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지만, CG는 절대 그렇게 못 나와요. 1초에 5천 프레임 정도가 필요하니까. 소금이 튀어 오르는 굉장히 세밀한 실험을 한 거지. 파비앙조차 한 번도 엄두를 내지 못한 작업이었고, 헐리우드에 온갖 전문가들이 총동원됐어요. 그걸 동영상으로 만드는 것 자체가 가치 있다고 생각했어요. 소금이 튀어오르는 그 황홀한 장면 자체가 놀라운 거죠. 실제로 파비앙은 우리가 했던 작업을 Ted 강연에서도 이야기했어요.”

광고생활자 이현종 전  2012년 마포 HS애드 빌딩에서 열린 전시, 광고생활자 이현종 展

 그는 광고와 예술의 관계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술의 존귀함을 빌려 자기 브랜드와의 동질성을 강압하기도 하며, 때론 예술의 순정성과 진정성 뒤에 얼굴을 감추기도 한다.’ 25년 광고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유난히 예술에 대한 관심 어린 시선이 묻어있습니다. 문득 그가 좋아하는 화가는 누구인지 궁금해 묻자, ‘잘 알진 못하지만, 호퍼’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호퍼와 이현종 ECD 사이의 공통 분모가 보였습니다. 호퍼도 순수 미술가로 활동하기 전 광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호퍼 그림엔 언제나 쓸쓸한 이야기가 있듯, 이현종 ECD가 추구하는 광고도 서사가 있는 광고입니다.

 “조용하지만 이야기가 있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비어있는 곳에서 느껴지는 이야기 같은 것. 가령 베스킨라빈스 광고 스타일을 개인적으로도 좋아해요. 드라마타이즈된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너무 엽기적이거나 기괴하거나 쇼킹한 쪽은 도리어 어렵게 느껴져요. 오히려 아무 말 없이도 슥 몰입되게 하는 위트 같은 것? 우리나라는 위트보다 펀(fun)을 좋아하죠. 개인적으로 저는 세련된 위트가 있는 광고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HS애드 이현종 ECD_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이 엠 샘. 엄마는 외계인. 모두 영화 제목입니다. 동시에 그가 붙여준 아이스크림의 이름들이기도 합니다. 아이스크림 광고를 담당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무렇지 않게 인턴 하나가 ‘아이스크림 이름은 재미가 없다’고 말한 걸 캐치했습니다. 그 때 생각했습니다. 아이스크림에 재밌는 이야기가 없다면, 이름만으로도 재미있는 서사를 심어주자고. 사실 진한 치즈 케익 맛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이엔 아무런 공통분모가 없었음에도 말이죠.

 “아이스크림이라는 게 사실 돈을 지불할 때 그렇게 꼼꼼히 따지는 게 아니거든요. 신기해서라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이스크림이라는 거지. 그런 지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새로운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어요. 기존의 프로세스를 깨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데. 그게 이름이었던 거지요. 당시에 상상한 건 일종의 위트였어요.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서 자기가 빨리 먹은 건데 ‘왜 이렇게 빨리 없어졌어?’ 바람한테 투정할 수 있잖아요. 그 느낌을 살려볼까 해서 내 맘대로 본래의 서사를 지우고 이름을 붙였어요. 아이스크림은 그 자체로 달콤하고 행복하잖아요.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LG 명화 캠페인 좌. 사랑해요 코리아 캠페인, 우. LG 명화 캠페인 2편

LG 명화 캠페인 1편. 1편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2편은 앙리 마티스의 작품을 응용했다.

 LG 명화 캠페인은 국내외 모두에서 상복이 터졌던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인상주의 그림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 제작한 이 캠페인은 타 기업 광고의 10분의 1 수준 제작비로 완성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후 70년이 지난 명화들은 저작권료와 무관했던 것입니다.

“예산은 타 기업의 10분의 1 수준인데, 나중에 기업 광고 선호도 조사에선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어요. 오히려 저예산이 더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들어주는 거 같아요. 저예산이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한 거죠. 당시 일부 미술협회에선 화가를 너무 희화화한 건 아니냐. 그런 얘기도 들었는데, 그건 극히 일부였고 대부분은 지지해주셨어요. 특히 어느 미술교사는 애들 미술시간에 그걸 보여주면서 화가한테 친근하게 다가가게 해주고, 벽에 붙여놓고 수업했다고 말했어요. 그런 건 광고가 본래의 마케팅 의미 외에도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면인 것 같아요.”

HS애드 이현종 ECD_3

평생 광고로 녹을 받으며 살아온 광고생활자, 광고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그에게 광고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광고가 일종의 환상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냐’는 조금 날 선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글쎄요. 환상이죠. 광고는 꿈을 파는 거니까. 그러나 그게 우리 모습이기도 해요. 기본적인 속성은 솔직한 거니까. 광고는 인간이 좋아하는 걸 기제로 쓸 수밖에 없잖아요.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 얼굴에 침 뱉기 아닐까요. 감춰진 욕망을 재현시켜주는 면에서 광고가 순수예술보다 좀 더 노골적이긴 하지만, 그 의도적이고 조작적인 면이야말로 인간과 사회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니까요.”

광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솔직합니다. ‘재밌으니까 광고를 하는 거고, 상품은 필요하니까 나오는 거고, 광고는 그 상품을 팔아야 하니까 하는 것.’ 이 한 줄만으로 어쩌면 그의 광고인생은 모두 표현된 것이 아닐까요.

손고운 프로필

손고운 사원은 LG커뮤니케이션센터에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모르는 것보다 알고 싶은 것이 더 많은 커뮤니케이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