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MBA]직원이 사랑하지 않는 회사는 고객도 돌아보지 않는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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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MBA]직원이 사랑하지 않는 회사는 고객도 돌아보지 않는다

작성일2012-06-18

매월, LG블로그를 통해 세계 각국의 미술관 또는 박물관을 탐방하고 그로부터 세계 일류기업, 성공한 이들의 성공 비결과 연관성을 찾아내는 [미술관 옆 MBA]코너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은 실험실이 아닌 한 그루의 사과나무 아래였으며,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을 발견한 것 역시 연구실이 아닌 욕조 안이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헝가리의 철학자 쾨슬러 아서(Ksztler Artr)는 ‘이연현상(Bisociation)’이라고 하여, ‘전혀 상관없을 것 같아 보이는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관계를 찾아내는 현상’이라고 정의하며, 이러한 이연현상이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의 주요한 원천이 됨을 밝혀낸 바 있습니다.

부디, 제 글이 LG블로그를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들의 뇌 속에서 이연현상이 촉진되는데 미력하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국립 두바이 박물관 직원이 사랑하지 않는 회사는 고객도 돌아보지 않는다.

한때, 아랍에미레이트(The United of Arab Emirate, 이하 UAE)를 이루고 있는 7개의 토후국 중 하나인 두바이(Dubai)는 ‘변화와 발전’의 상징이었습니다. 다른 아랍 국가들이 막대한 오일달러를 바탕으로 흥청망청 돈을 써대기만 할 때, 두바이는 아라비아반도를 대표하는 무역항구 중 하나라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중계 무역, 금융, 컨벤션&리조트 사업 등을 발전시키며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거듭했었죠.

이는 두바이가 아랍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주변 국가에 비해 석유 매장량이 터무니없이 작았던 탓에 생존을 위해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두바이의 왕이자 UAE의 부통령인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Sheikh Mohammed bin Rashid Al Maktoum)의 혜안(慧眼)과 절대 왕권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 덕분에 그들의 발전 속도는 눈부셨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산유국에서 중계무역-금융국가로의 두바이 변신은 놀라운 성과를 거뒀습니다. 당시, 세계최대, 세계최고, 세계최고급의 것들은 몽땅 다 두바이에 있거나,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었죠.   

마케팅적인 수사였지만, 어찌되었든 세계 최초의 7성급 호텔 이었던 두바이의 부르즈 알 아랍(Burj Al Arab)호텔. 투숙이 아닌 내부 견학만을 하기 위해서도 비용(환율에 따라 다르지만 약 3~4만원 정도)을 지불해야 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층 빌딩인 부르즈 칼라파(Burj Khalifa) 전체 높이 828m, 총162층의 건물로, 지난 해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미션 임파서블4(Mission Imposible:Ghost Protocol)에서 주인공 에단 헌트(톰 크루즈 분)가 긴장감 넘치는 침투 장면을 연출하여 더욱 더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다. 웬만하면 아마추어의 사진기로는 빌딩 전체를 다 찍기도 어렵다. 이 사진 역시 약 1km이상 떨어진 곳에서 겨우 담아낸 사진

하지만, ‘두바이(아랍어로 ‘메뚜기’를 뜻함)’라는 이름 때문이었을까요?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우리네 속담처럼, 두바이의 고속질주 성장신화는 2008년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서브 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더니, 부동산 경기가 급락하면서 해외자본들이 속속 빠져 나가버려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선언을 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고, ‘아랍금융의 중심지’, ‘세계 최고의 리조트 도시’라는 광고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급속하게 몰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같은 ‘아랍 형제국’이자, UAE연방의 가장 맏형 격인 아부다비(Abu Dhabi)의 긴급 자금 지원 덕분에 겨우 회복세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과거와 같은 영광을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2007년 방문했을 때 두바이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던 공사판에서 일하기 위해 인도와 중국에서 물밀듯이 몰려들었던 노동자들을 어디서든 볼 수 있었는데, 2009년에 방문했을 때는 그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시내가 한산한 느낌마저 들었고, 여기 저기에 공사를 하다가 중단한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 다시 가니 이제는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겨우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고 상하가 합심하여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한 노력의 중심에 있는 곳이 바로 오늘 말씀드릴 ‘두바이 박물관’입니다.

두바이 박물관의 외부 모습한때 두바이는 ‘Dubai is on birthday’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새롭게 거듭나는 도시였습니다. 때문에 원리주의가 지배하는 다른 아랍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세속주의를 허용하는 이웃국가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들은 외부에 대한 개방과 변화에 너그러웠고 외자, 외국문화의 자유로운 유입 등을 보장했었죠. 그 덕분에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서양인들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며 금융사업을 벌이고 쇼핑몰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바이는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지만, 한 서양 언론기자가 ‘두바이에 가면 만날 수 없는 국민이 딱 하나 있다. 그는 바로 두바이 국민이다’라고 비아냥 댈 정도로, 국가적인 정체성의 확립과 자국 문화에 대한 국가 구성원들의 이해와 애정, 국민적 통합 정도는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국가가 성장하고, 외부로부터 돈과 인력이 몰려들 때는 그러한 부분이 별 문제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2008년 위기상황이 닥치고, 외국인, 외국 자본이 철수하기 시작하자 엄청나게 큰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를 인식한 두바이의 지도자들은 뒤늦게 해결책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노력 중 하나가, ‘두바이 전통문화의 복원을 통한 국민적 자긍심 회복’활동이었습니다. 일명, ‘두바이를 제대로 알자’, ‘두바이를 사랑하자’는 운동이었지요. 정부는 1995년 마지막 리뉴얼 이후로 새로운 관광명소(앞서 본, ‘부르즈 칼리파’나 ‘팜 주메이’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개발에 정신이 팔려 더 이상 손대지 않고 있던 두바이 박물관에 대규모 투자를 해서 전시물들을 확충하고 관람객 편의 시설을 확장했으며,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관심 제고를 위한 홍보에 나섰습니다.

국립 두바이 박물관은 두바이 구시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1970년까지는 감옥이나 관청, 왕의 별궁 등으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원래는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1700년대 말에 축조했던 ‘알 파히디(Al Fahidi) 요새’를 그 기원으로 하는 건물입니다. 때문에 가서 보시면 전형적인 박물관 또는 미술관의 형태와는 다르게, 적을 감시하기 위한 망루나, 도주로 확보를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미로 같은 통행로들을 건물 곳곳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두바이 박물관의 내부는 전형적인 박물관과 유사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외부로 나와서 보면 흡사 중세의 성벽과 흡사한 방호시설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다지 큰 규모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곳곳이 미로와 같은 좁은 통행로로 이루어져 있어 자칫하다가는 길을 잃을 우려가 있다. 햇볕을 가리기 위한 차일이 드리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골목에서 사진 직을 당시의 기온은 자그마치 섭씨 51도!하지만 실제 방문해서 보면, 앞서 두바이 정부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준비기간이 짧거나 유물을 수장하고 전시하는 역량이 부족해서인지, 아직까지 ‘국립 박물관’, 그것도-많이 쇠락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왕년에 한 끗발 날리던-두바이 정부가 야심 차게 운영하는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조금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두바이 동쪽인 데이라(Deira) 지역의 부족마을인 알 구사이스(Al Qusais 또는 Al Gusais)에서 발견된 고분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 몇몇 유명한 유물 정도를 제외하고는, 낡은 무기와 농기구 또는 사막에 사는 유목민들의 생활도구 등이 전시돼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도 혹독한 사막기후 탓에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된 유물은 드물어서 대부분 복원품이거나 조잡한 밀랍인형으로 비슷한 분위기만 재연해 놓은 전시물들이 대부분입니다.

 

과거 두바이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향신료를 거래하는 상인과 상점의 모습을 재연한 밀랍인형 전시물과 사막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독특한 형태의 목제 구조물, 사진과 같은 형태의 망루 밑에 몇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놓여져 있다. 사막에 부는 미세한 바람이 망루 지붕 아래 보이는 천으로 된 돛을 돌리면 신기하게도 그 아래 놓여진 의자 위로 시원한 바람이 쏟아진다. 유목민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전통 유물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리고 두바이 정부의 노력이 효과를 발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의 모습에서 입니다.

다른 국제도시들과 달리 두바이 박물관의 관람객은 거의 100%라고 할 정도로 두바이 내국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이 과거 사용해 왔고,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에 지나지 않은 이 곳에 수많은 두바이 국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전시를 관람하는 두바이 국민들의 태도입니다. 외국에서 온 저희의 눈에도 조금은 뻔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진부한 전시물들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관람을 하는 그들의 태도는 진지하기 이를 데가 없었고, 혹여 라도 몇 안 되는 외국인 관람객이 전시물에 관심을 표하기라도 할라치면 아는 체를 하고, 자신의 아는 지식, 모르는 지식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동원해서 무언가 더 설명하고 얘기를 해 주려고 안달이 난 모습들이었습니다.
전시물을 관리하는 직원들 역시 마찬가지. 단순히 도난이나 파손을 막기 위해 관람객을 통제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틈이 날 때마다 전시된 유물들을 닦고 손질하고 관람객들의 사소한 질문에도 기꺼이 진심을 다해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을 관람하며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자, 뻔하던 전시물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박물관 앞마당 전시된 물통. 정말로 그냥 물통(Water Tank)이다. 하지만 박물관 경비를 담당하던 미스터 하싼의 애지중지하는 모습과 함께 어우러지면 이 그냥 물통이 대영박물관의 고대 그리스 유물과 같은 레벨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유가 뭘까요?
현재 6권까지 출간된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
이 책을 읽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줬던 이 글귀는 조선 정조 대 유명한 문인이었던 저암(著庵) 유한준(兪漢雋) 선생이 지인이자 당대 최고의 수집가였던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의 화첩에 써준 발문에서 유래합니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해석하면 내용은 거의 유흥준 교수가 적은 글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서 쉽게 보아 넘겼던 것들이라도, 진심을 다해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보면 보지 못했던 면들이나 가치를 볼 수 있게 되고, 그때 그 모습이나 가치는 이전에 보았던 것과는 판이하게 틀리다는 뜻일 겁니다.

두바이 국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비록 크게 내세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굳건히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자국의 모습, 문화와 전통 등에 대해 애정을 갖고 보게 되자,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해 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 보이는 두바이는 이전에 보이던 두바이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들은 잃었던 자부심과 자신감을 다시 찾게 되었고, 이제는 새로운 두바이로 다시 뛰고 있습니다.

기업 또한 역시, 매번 고객들을 향해 아껴달라, 관심을 가져달라, 자주 찾아달라 애원을 하지만, 그 전에 그 기업 안에서 근무하는 구성원 스스로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얼마나 스스로 아끼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들이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면서 그를 고객에게 선보이고 애정과 관심을 가져달라고 한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설혹 몇 번은 가능할는지 모르지만 그게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을까요?

때문에 고객으로부터 사랑 받는 기업이 되는 기본은 먼저 그 기업에 근무하는 구성원들이 자신이 일하는 기업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살펴서 자신들이 보유한 가치에 대해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승승장구하고 있는 우량 기업들이나 성공적인 경영자들은 외부에 대한 기업공개, 언론홍보 등에 신경 쓰는 만큼이나 내부 구성원들이 몸담고 있는 자신의 회사나 사업장, 부서 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활동을 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 다른 나라 사람들이나 관광객, 투자자들에게 보여지는 모습만을 강조하던 두바이가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강조하며 두바이 박물관을 비롯한 자국의 문화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실제로 그런 노력들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해서 일반 국민들이 자국의 문화 유산에 대해 알려 하고, 그를 아끼고 가꾸려 노력하는 모습에서 지금은 비록 조금 힘든 시기를 겪고 있지만, 두바이가 분명 전 세계인들이 관심과 애정을 갖고 찾아 들던 과거의 화려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조금은 긍정적인 전망을 조심스레 해 봅니다. LG

PS. 한국인이라면 자부심을 느껴도 될 사진 한 장을 덧붙이며 이번 포스팅을 마칠까 합니다.

한 낮의 두바이가 어찌나 더운지, 사진 속의 버스정류장은 우리와 달리 폐쇄형 부스형태로 되어있다. 버스가 오면 자동문이 열리고 그 외의 시간에는 항상 문이 닫힌 채 냉방이 되어 있다. 어찌나 시원한 지 버스이용객이 아니라도 두바이의 많은 시민들이 수시로 이 버스 정류장에서 더위를 피해 가고는 한다. 사진에는 정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 냉방을 책임지는 에어컨은? 당연히 LG의 에어컨이다.

신인철 프로필

샐러던트(공부하는 직장인)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전부터 직장생활, 학습, 저술과 강연을 병행해온 국내 샐러던트 1세대. LG생명과학 업무홍보팀에 근무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토요일 4시간>,<가족과 1시간>,<핑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