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MBA] 결국, 가장 큰 무기는 기본기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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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MBA] 결국, 가장 큰 무기는 기본기다

작성일2012-07-30

매월 전 세계 유명 미술관과 그 미술관을 만들어 낸 나라, 그리고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로부터 경제 경영상의 혜안과 조직 및 인적 관리 등에 필요한 지혜를 유추해 보는 ‘미술관 옆 MBA’입니다.
이번 달에는, 최근 들어 경제위기로 인한 IMF구제금융 신청과 월드컵에 버금간다는 축구이벤트였던 유로 2012(Euro 2012)에서 우승을 하면서 이래저래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스페인과 그들이 자랑하는 미술관임과 동시에 프랑스의 루브르 미술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or박물관)’으로도 불린다는 프라도 미술관을 찾아가서 그들이 패션 분야에서 거뒀던 성공의 비결에 대해 알아보고, 그로부터 교훈과 반면교사를 얻는 시간을 가져 보고자 합니다.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결국, 가장 큰 무기는 기본기다

사실, 스페인은 나라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화려함이나 다채로움, 역사상 배출한 수많은 예술가(피카소, 가우디, 달리 등)들의 숫자 등에 비해 세계 패션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은 나라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패션산업을 선도하는 굵직한 명품 브랜드도 적은 편이고, 패션 동향을 좌우하는 거장 디자이너도 거의 없었던 편이죠.
물론, 가죽 제품에서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을 인정받는 로에베(Loewe)같은 브랜드나 ‘스페인의 국민 디자이너’라고 까지 불리는 아돌프 도밍게즈(Adolfo Dominguez)같은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이웃 유럽 국가의 유명 브랜드나 디자이너들에 비해 그 존재감은 많이 부족한 편이었습니다. 우루과이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린 시절 스페인으로 이주하여 줄곧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했던 세계적인 패션 일러스트 작가 조르디 라반다(Jordi Lavanda) 정도가 스페인 브랜드로 세계 패션계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는 정도였으니까요.

국내 모 백화점의 쇼핑백에 사용되면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조르디라반다의 패션 일러스트. 세련된 선과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으로 잡지, 광고 등에 널리 쓰이고 있으며 작품 하나에 수천 만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하는 일러스트계의 슈퍼스타이다.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내전이라는 그들의 불행한 과거를 그 이유로 꼽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세계 패션계를 주도하고 있는 거장 디자이너 및 패션 아이콘들이 대거 등장하던 20세기 초반 무렵, 스페인은 ‘스페인 내전(Guerra Civil Espaola, 1936년~1939년)’을 겪으면서 참혹한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는 것이죠.
물론, 다른 유럽 국가들도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참화를 겪었지만, 덩치 좋은 건강한 청년이 감기에 걸렸을 때와 병약한 노인이 감기에 걸렸을 때 그 고통과 회복기간이 다른 것처럼, ‘무적함대(Grande y Felicisima Armada)’를 앞세워 세계를 누비던 영광스러운 중세시대 이후 국력이 쇠퇴에 쇠퇴를 거듭해서 이미 기력이 쇠할 대로 쇠했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무렵의 스페인에게,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 국토를 전쟁터로 만들었던 내전은 감기가 아니라 거의 불치병 수준으로 나라 경제와 사회구조, 패션을 포함한 문화계 전반을 초토화시켜 버렸습니다.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 206호 전시실에 전시 중인 그 유명한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Guemica). 1937년 4월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측을 지원하던 독일 나치군이 24대의 폭격기로 게르니카 지역을 폭격하던 당시의 참상을 그려낸 작품이다.(블로거:내부는 사진 촬영이 삼엄하게 금지되고 있어, 본 사진은 소피아 미술관 공식 블로그 http://www.museoreinasofia.es/colecoin/presentacion-coleccion/PicassoGuemica700.jpg에서 인용)

게르니카가 전시중인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현 왕비의 이름을 따서 설립한 복합예술관련 시설로 피카소, 달리, 미로를 비롯한 현대 미술의 거장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공간과 관련 서적을 볼 수 있는 도서관, 강의실, 영사실 및 휴게실 등이 완비되어 있다.하지만, 스페인 패션산업이 프랑스나 이탈리아, 심지어 독일과 영국에 비해서도 한참 딸린다던 고정관념은 최근 들어 과거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세계 4대 패션쇼는 전통적인 패션 강국 프랑스(파리)와 이탈리아(밀라노), 그리고 신흥 강국인 일본(동경)과 미국(뉴욕)이 주도하고 있고, 전 세계 명품 디자이너 브랜드의 75% 이상 역시 이들 4개 국가 출신이 차지하고는 있지만, 분명, 스페인의 패션산업은 놀라운 속도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공략의 첨병은 유명 디자이너에 의한 명품 브랜드에 의해서가 아니라, 벌당 15유로에서 비싸 봐야 100유로를 넘지 않는 중저가의 옷을 대량 생산해내는 한 패션 브랜드로부터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대단한 일을 해낸 브랜드의 이름은 바로 ‘자라(ZARA)’입니다.

스페인 현지의 자라(ZARA) 매장. 스페인어 모음 Z는 ㅅ(시옷)으로 발음이 된다. 마드리드 근교의 관광도시 사라고사도 스페인어로 Zaragoza로 적는다 때문에 한국사람이 현지 자라 매장에 방문하면 여기 저기서 들리는 사라 소리 탓에 구매욕에 강한 자극을 받게 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현지 발음대로라면 ‘사라’라고 적어야겠지만,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대로 적기로 하겠습니다. ‘자라’는 1975년 스페인 북서부의 작은 도시 라 코루나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떼가(Amancio Ortega)는 가난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서 12살 이후로는 학교를 다녀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3살에 동네 양복점에 취직해서 미싱 보조로 일하던 중 의류용 천 유통업에 눈을 떠서 1963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가게를 열었고, 이후 9년이 지난 1972년부터는 의류 제작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힌 천을 다루는 기술과 유통업을 하며 쌓은 좋은 원단을 보다 값싸게 구입하는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는 남보다 좋은 옷을 더 싸게 만드는데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였고, 만드는 옷마다 시장의 호평을 받은 그는 3년 뒤인 1975년에 자신이 나고 자란 라 코루나에 ‘자라 1호점’을 개점하게 됩니다. 이후 ‘풀 앤 베어(Pull & Bear)’, ‘마시모 두띠(Massimo Dutti)’등 굵직굵직한 패션 브랜드 들을 창업 또는 인수하며 패션사업을 중심으로 한 거대 기업집단으로 성장한 자라, 모기업인 인디텍스(Grupo Inditex)의 본사 역시 바로 이곳 라 코루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인디텍스는 전 세계 77개국에 8개 브랜드 5천여 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거대 패션그룹으로 성장했고 창업주 오르떼가 회장의 자산규모는 375억 달러(약 42조원)로 스페인 최고는 물론, 전 유럽을 통틀어서도 3위 안에 드는 규모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자라는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고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에 대해 자라가 ‘괜찮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하고 ‘신속’하게 만들어서 판매하는 글로벌 스파(SPA,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제조직매형 의류회사)기업 특유의 사업모델을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성공적으로 수행한 데에서 찾고 있지만, 단순히 그 정도 만으로 자라가 짧은 시간 만에 세계 패션계에 이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거대 패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그들의 성장 비결을 새삼 깨달은 것은 자라의 매장이나 인디텍스의 본사 사무실이 아니라, 뜻밖에도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라며 스페인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Museo Nacional del Prado)’ 그리고 바르셀로나 시내에 위치한 FC바르셀로나(FC Barcelona)의 홈경기장인 ‘캄프 누(Camp Nou)’에서였습니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프라도 미술관. 겉으로 보기에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으나 안으로 들어가면 엄청나게 많은 전시실과 숱한 걸작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려져 있는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게 된다.프라도 미술관은 마드리드는 물론, 전 스페인이 자랑하는 미술관입니다.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벨라스케스(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등 스페인이 낳은 세계적인 화가들이 남긴 불후의 명작들을 말 그대로 ‘무지막지하게’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건축학을 전공하던 한 한국인 대학원생 배낭여행객이 ‘오기 반(半) 객기 반(半)’으로 “개나 소나 프라도, 프라도 하며 대단하다고 말들 많은데, 내가 프라도 미술관의 모든 작품들을 감상하고야 말겠다!”는 목표를 주위에 선언하고 계획했던 스페인 여행 일정을 전면 수정한 뒤 일주일 내내 프라도 미술관에 출근하다시피하며 전시실에 전시된 모든 그림을 감상하였답니다. 마지막 전시실 감상을 마친 뒤 득의양양하고 있으려니, 미술관 직원들이 다음 주 전시를 준비하며 그림을 바꿔 거는 걸 보고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는… 이런 얘기가 전해져 내려올 정도입니다.

마드리드는 물론, 전 스페인이 자랑하는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

실제로 현재 전시 중인 작품들은 전체 소장 작품의 10분의 1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하며, 매주 다른 그림을 서로 다른 위치로 변경해 가며 전시를 해서, 평생 마드리드에 거주하며 매주 프라도 미술관에 들르는 사람들조차도 올 때마다 매번 생소함을 느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작품들에서 저는 지난 30여 년간 ‘자라’가 거둔 패션업계에서의 고속 성장의 비결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자라’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스파’ 브랜드입니다. 스파브랜드의 미덕이자 생존과 성공을 위한 필수요건은 시장에서 유행할 만한 디자인의 옷을 재빠르게 착안하고 빠르게 생산해서 싸게 공급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라는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 하나를 더 해냈습니다. 그건 바로 그들이 만들어 낸 옷이 여느 명품 브랜드의 제품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품질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자라는 적절한 원단과 재봉기술 사용에 그친 다른 경쟁 스파 브랜드와 달리 그들은 패션산업에 있어서 가격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주된 요소이자, 베끼기는 쉬워도 소비자로부터 인정받기는 어려운 ‘디자인’ 부분에서 차별점을 보여주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인 벨라스케스作 시녀들(Las Meninas, 1656~5년작, 캔버스에 유채, 318*276)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굳이 이 그림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흘러가는 대로 발길을 따라 걸으면 이 그림을 만날 수 있다. 루브르의 모나리자나 대영 박물관의 로제타 스톤이 그런 것처럼.(블로그:내부는 사진 촬영이 삼엄하게 금지되고 있어, 본 사진은 벨라스케스 작가 소개 페이지 http://www.diegovelazquez.org에서 인용) 스페인 사람들은 불행한 현대사 탓에 1950년대 이후 세계 패션무대에서 그 존재감을 발휘할 기회를 잃었고, 그만큼 경쟁에서도 뒤쳐져 버렸지만, 그들은 원래 시간과 공간 감각, 색채를 뽑아내고 다루는 분야에 관해서는 유럽에서 가장 앞선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스페인은 자신들이 자리잡고 있는 이베리아 반도(Península ibérica)가 과거 550여 년간 아랍계인 무어인(Moors)들의 지배를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무어인들의 앞선 숫자감각, 기초과학지식, 시간관념 등이 유럽 특유의 합리성과 만나면서 그들은 엄청난 문화적 성과를 거뒀었습니다. 또한 빛나는 태양과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가장 화사하고 다채로운 색채들을 어린 시절부터 접해오던 사람들이기도 했던 스페인 인들은 안료를 만들고 염색을 하는 데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발휘했었죠.
그런 조상들이, 지금도 그림의 구도와 공간배치에 얽힌 비밀을 완전하게 풀어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시녀들’과 같은 그림을 그려냈고, 검은색 하나로 다른 화가들이 평생 사용하는 모든 색을 표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 ‘옷 입은 마야’, ‘옷 벗은 마야’(둘 다 모두 고야의 작품)같은 그림을 그려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림들을 일상생활 속에서 접해오고, 감사하며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해 오고, 때로는 따라 그려오며 그들은 저도 모르게 탄탄한 기본기를 다져왔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작은 늦었지만 그들은 세계 수준의 명품 패션 브랜드들이나 다룰 수 있는 색채감각과 패턴 등을 자신들의 옷에 접목 시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살고 있는 자연과 역사 속의 조상들로부터 물려받고, 보고배운 색과 선과 공간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는 기술 자들이 있었기에, ‘자라’를 위시한 스페인 패션기업들은 오랜 암흑기를 신속하게 극복하고 세계인들의 구미에 맞는 세련된 옷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듯 합니다.

비슷한 사례로 얼마 전, ‘유로 2012’에서 최고의 화제는 엄청난 경기력으로, 결승전에서 보기 힘든 4:0이라는 스코어차로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린 스페인 축구 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할까 합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들이 선보인 ‘가짜 9번(False 9)’이라는 신종 전술이었습니다. 9번이라는 등 번호는 축구에서 최전방 공격수를 뜻합니다. 스페인이 선보인 전술은 일명 최전방에 빠른 스피드와 몸싸움에 능한 공격수를 두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이 아니라, 전 선수가 정교하고 치밀한 패스를 하며 점유율을 높여나가다가 때로는 공격수의 숫자를 7~8명까지 극단적으로 늘리기도 하고, 때로는 수비에 6명 이상의 선수가 참여하는 유기적인 플레이를 하는 축구였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선수 전원이 전술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공격수로써의 역할과 수비수 또는 미드필더로써의 역할을 모두 해낼 수 있어야만 가능한 전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술 그리고 그러한 전술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스페인 축구팀 역시 최근 들어 갑자기 등장했던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축구팬들의 성지 중 하나인 캄프 누(Camp Nou) 현재 세계 최고의 인기축구 구단이자, 최근 들어 자국과 해외리그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스페인 프리미어 리그의 강팀 FC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이다. 수용인원 9만 9천 여명의 초대형 경기장과 그 부속 체육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방문한 이날에만도 무려 3개 종목 6개의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드리드를 연고로 하는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 Club de Fútbol)’와 함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벌 관계(El Clásico)를 형성하고 있는 ‘FC바르셀로나(Futbol Club Barcelona)’의 홈 구장인 ‘캄프 누’에는 역대 FC바르셀로나의 역사는 물론 스페인 프로축구의 역사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초대형 박물관이 있습니다.
입구에서부터 수백 개의 우승 트로피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이 박물관에는 물론, 현역 선수로 현재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 ‘메시(Lionel Andrés Messi)’와 유로 2012 MVP로 뽑힌 ‘이니에스타(Andrés Iniesta Luján)’의 유니폼과 사인이 된 사진 등이 주요 전시품으로 전시되고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토탈 축구(Total Soccer)’의 창시자 ‘요한 크라위프(Hendrik Johannes Cruijff)’에 관한 전시물들이었습니다.

FC바르셀로나 박물관의 가장 메인 코너에 전시되고 있는 요한 크라워프의 유니폼. 그는 FC바르셀로나에서 선수, 감독, 행정가로 모두 우승을 맛봤던 인물이었다.

요한 크라위프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를 지냈고, 역시 네덜란드 프로축구팀인 ‘아약스(AFC Ajax)’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던 대표적인 네덜란드 축구인 이지만, 그의 축구가 만개를 한 것은 FC바르셀로나에서였습니다. 그가 아약스에서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할 시 200만 불이 넘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외화가 이적료로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흘러나가게 되는 것을 우려한 스페인 세무 당국이 제재를 가하자, 당시 바르셀로나 프런트는 농업 선진국이었던 네덜란드에서 ‘농업용 기계’를 수입하는 것으로 하고, 크라위프를 그 농기계 도입계약에 포함된 ‘운영직원’으로 등록해서 일괄 수입 및 통관 등록을 해버리는 편법을 이용해서 그를 데려 오기도 한 헤프닝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가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운영위원 및 고문으로서 바르셀로나에 뿌리내린 것이 바로 ‘토탈 사커’와 그에 필요한 개인기와 전술적 이해능력입니다. 그리고 그가 바르셀로나에 전파한 선진 그 전술은 우수한 선수와 지도자들을 통해 다른 팀으로 전파되고 손질되어 보다 나은 전술로 발전되면서 스페인 축구팀들과 선수들 사이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며 또 계속 보완되어왔습니다.
이미 100여 년도 넘는 클럽축구의 역사와 전통 아래, 485개의 프로팀(1부 프리메라리가 20개 팀, 2부 세군다A 22개 팀, 3부 세군다B 80개 팀, 4부 격인 테르세라 363개 팀)이 매년 우승은 물론 리그에 잔류하느냐 강등당하느냐를 두고 피 말리는 접전을 벌이고, 그를 떠받치는 수십 개의 지역리그 별로 다시 수백 개 이상의 축구팀들이 각축을 벌이면서 배출해낸 65만 명이 넘는 등록선수들.스페인의 우승과 스페인 축구의 대대적인 약진은 ‘가짜 9번’ 전술의 반짝 승리라기 보다는 ‘어떠한 전술’을 적용하던지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체득하여 실전에서 100% 활용할 수 있는 스페인 선수들의 전술이해도와 탄탄한 기본기’의 승리와 가치를 입증한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조직 구성원들의 내면 속에 잠재되어있는 기술적 노하우나 문화적 감수성,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대한 공감대. 기업에서는 이런 것들을 기술적 측면에서는 ‘원천기술’이라 하고, 인사∙조직적 측면에서는 ‘고유의 조직문화’라고 표현을 합니다.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이나 서비스 외적으로 드러나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기업 또는 그 기업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의 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기본이 탄탄한 기업은 한때 조금 어렵거나 약세를 보이더라도 제대로 된 기회를 맞으면 이제껏 움츠렸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이, 멀리, 오래 도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R&D에 대한 투자와 R&D 우수인력의 확보에 대한 관심을 오히려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는 LG의 모습은, ‘LG Way’라는 고유의 정신적, 문화적, 사상적 공감대를 끊임없이 공유하고 체득하고 있는 LG는, 조만간 멋진 제품을 들고 나와 고객의 마음 속에 ‘Zara(사라, buy)’라는 메아리가 퍼지게 하고, 만드는 제품마다 한 골씩 터트리는 ‘9번 골잡이(주력제품)’ 역할을 하는 그런 LG가 되리라는 기대감을 더욱 더 높여 줍니다.LG

신인철 프로필

샐러던트(공부하는 직장인)라는 단어가 생겨나기 전부터 직장생활, 학습, 저술과 강연을 병행해온 국내 샐러던트 1세대. LG생명과학 업무홍보팀에 근무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토요일 4시간>,<가족과 1시간>,<핑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