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5. 혁신으로 최고의 인기를 이끌어온 LA다저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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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5. 혁신으로 최고의 인기를 이끌어온 LA다저스

작성일2015-05-19

2013년 류현진 선수가 LA다저스로 이적하며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자 우리 나라에 LA다저스 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심지어 류현진 선수가 뛰지 않을 때도 LA다저스 경기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우스갯소리지만 kt가 승격되기 전 10구단으로 불릴 정도였습니다. 우리 신문에는 매일 LA다저스 기사가 나와 한국 선수들보다 다저스 선수들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됐습니다.

LA다저스 한국인 메이저리거 류현진 선수(이미지 출처: 플리커 Keith Allison)

LA다저스 한국인 메이저리거 류현진 선수(이미지 출처: 플리커 Keith Allison)

LA다저스의 인기는 미국에서 더 대단합니다. 올해 LA다저스는 시즌 개막 전에 이미 300만 매의 입장권을 판매했습니다. 지난 해 홈 관중만 378만 명이 들어 메이저리그 전체 1위에 올랐습니다. 원정경기까지 합하면 652만 명으로 2014년 한국 프로야구 전체 관중 수인 650만 명보다 많습니다. 이런 인기는 매우 오래된 것으로 1958년 LA로 연고를 옮긴 후 모두 26시즌에서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했습니다. LA다저스의 인기는 저절로 얻어진 게 아닙니다. 다저스는 항상 혁신을 주도해 왔고, 그 결과 팬들의 사랑을 받게 됐습니다.

최초의 흑인 선수 영입

다저스는 흑인을 처음으로 기용했습니다. 1947년 4월 15일 브루클린의 야구장, 등번호 42번을 단 재키 로빈슨(Jakie Robinson)이 1회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상대 투수의 초구를 받아 친 공이 3루쪽 깊숙한 곳으로 향했고 발이 빠른 로빈슨은 송구와 거의 동시에 1루 베이스를 밟았습니다. 하지만 아웃이 선언됐습니다. 1루에서 접전일 때 세이프를 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날은 달랐습니다. 로빈슨은 심판에게 달려들려고 하다가 그냥 되돌아서서 덕아웃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메이저리그의 첫 흑인이었기에 수많은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이날 절반이 넘는 흑인 관중들은 그를 향해 환호했지만 나머지 백인 관중은 꺼지라고 야유했습니다.

1954년 브루클린다저스 시절 재키 로빈슨

1954년 브루클린다저스 시절 재키 로빈슨

1919년생인 로빈슨은 UCLA에서 야구뿐만 아니라 육상, 수영, 풋볼, 농구 등 다양한 종목에서 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었습니다. 졸업 후 야구를 선택하여 흑인들로 구성된 니그로리그에서 뛰면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홈런 타자는 아니었으나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니자 상대 팀은 그를 더욱 미워했습니다. 신시내티 원정에서 백인 관중들은 ‘깜둥이’를 합창하며 로빈슨을 향해 증오를 드러냈습니다. 당장이라도 폭동이 일어날 기세였죠. 이때 브루클린 다저스의 유격수 피 위 리즈(Pee Wee Reese)가 1루수인 로빈슨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대화를 나눴습니다. 신시내티에도 많은 팬을 거느린 남부 출신 리즈의 돌발 행동에 놀란 관중은 야유를 멈췄고, 경기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차별 속에서도 로빈슨은 열심히 뛰었고, 팀 동료들도 그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로빈슨은 첫 해 신인왕에 선정됐습니다. 10년간 통산 3할1푼1리에 6번 올스타에 뽑혔으며, 1949년에는 리그 MVP에 올랐습니다.

1947년 신인왕에 선정된 재키 로빈슨(이미지 출처: 플리커 Dan Gaken)

1947년 신인왕에 선정된 재키 로빈슨(이미지 출처: 플리커 Dan Gaken)

흑인인 로빈슨을 스카우트한 사람은 브루클린 다저스의 전설적인 단장인 브랜치 리키(Branch Rickey)였습니다. 로빈슨이 성공하자 리키 단장은 기량이 탁월한 흑인 선수들을 더 데려왔습니다. 인종차별이 공공연했던 시절에 전국의 흑인들을 몽땅 다저스의 팬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팀에서도 흑인 선수들을 조금씩 영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뉴욕 양키스에 밀리던 다저스는 이때부터 명문 구단으로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로빈슨은 야구계를 넘어 미국 사회 전반에 흑인 권익 향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같은 공로로 1997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재키 로빈슨 데뷔 50주년을 기념하여 전 구단에서 그의 등번호인 42번을 영구결번으로 제정했습니다. 2007년부터는 로빈슨이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날인 4월 15일을 ‘재키 로빈슨 데이’로 정해 모든 구단의 선수들이 등번호 42번을 달고 야구를 하게 됐습니다.

영구결번으로 제정된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

영구결번으로 제정된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

최초의 흑인을 데뷔시켰던 다저스의 전통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 다저스는 남미 리그를 주시하면서 뛰어난 선수를 영입하는 데 가장 앞서나갔습니다. 또 아시아 시장에도 제일 먼저 눈을 떴습니다. 1995년에는 사실상 미국에서 성공한 첫 일본 선수인 노모 히데오를 데뷔시켜 일본에 메이저리그 붐을 일으켰고, 비슷한 시기에 박찬호를 데려가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만들어 우리 나라에도 메이저리그 팬을 양산했습니다. 1998년에는 최초의 대만 출신 메이저리그 선수 첸진펑과 계약했습니다. 이로 인해 다저스는 전 세계 곳곳에 팬을 가장 많이 거느린 팀이 됐습니다.

최초의 서부 구단 설립

인종의 벽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듯이, 다저스는 최초로 서부로 옮겨갔습니다. 로빈슨과 함께 뛰어난 흑인 선수들을 받아들인 다저스는 2년에 한번 꼴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구장이 좁고 낡아 관중 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당시 구단주였던 월터 오말리(Walter O’Malley)는 구장을 신축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마침 서부의 대도시에서도 야구단을 유치하려고 했고요. 이에 오말리는 오랜 라이벌이었던 뉴욕 자이언츠와 함께 서부로 연고지를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다저스는 LA로, 자이언츠는 샌프란시스코로 향했습니다.

1959년 월드시리즈가 열린 LA콜리세움

1959년 월드시리즈가 열린 LA콜리세움

대부분의 야구단들이 동부지역에 몰려 있던 상황에서 서부로 옮기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1958년 4월 18일 LA 콜리세움에서 다저스는 자이언츠와 서부에서 첫 경기를 가졌습니다. 7만 8천명이 넘게 운집한 홈 관중 앞에서 다저스가 승리했습니다. 이후 자이언츠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서부에서 야구의 흥행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LA로 옮겨간 이후 다저스의 관중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현재의 LA 다저 스타디움(Dodger Stadium) 전경(이미지 출처: 플리커 Official U.S. Navy Page)

LG 후원

2013 시즌부터 LA다저스를 공식 후원하고 있는 LG

최초의 스프링캠프 구축

LA다저스는 최초의 스프링캠프를 시작한 것을 비롯, 기술 혁신으로 야구를 한 단계 도약시켰습니다. 로빈슨 영입을 계기로 다저스는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야구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주루 플레이가 빠른 로빈슨을 활용해 다양한 작전을 시도했습니다. 또한 이전까지는 홈런이나 장타에 의한 야구 위주였지만 홈런을 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현대 야구가 시작됐다고 봐야 할 정도입니다. 브랜치 리키 단장은 이런 다양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시즌이 시작되기 전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에 있는 낡은 군사시설을 사들여 ‘다저타운’이라 이름 붙이고 스프링캠프 장소로 활용했습니다. 여기에서 다저스 선수들은 체력 훈련과 새로운 기술을 보완하면서 다양한 작전을 몸소 익혔습니다.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에 있는 다저타운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에 있는 다저타운

지금은 타격 연습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배팅 케이지(batting cage)와 투구기(pitching machine)도 이때 최초로 개발해 사용했습니다. 타석에서 쓰는 헬멧도 다저스가 최초로 사용했고요. 즉 다저스로 인해 미국의 야구 기술은 더욱 발전하게 됐습니다.

경쟁에서 벗어나 다름을 추구한 브랜치 리키

이런 다저스의 혁신에 불을 지핀 사람은 1943년부터 단장을 맡았던 브랜치 리키입니다. 리키 역시 야구선수였습니다. 양키스의 전신이었던 팀에서 포수로 활동했으나 그저 그런 성적을 냈었습니다. 리키는 그라운드에서 생각이 너무 많았던 게 문제였습니다. 그는 다른 선수들의 플레이를 관찰하면서 야구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생각이 많은 선수가 순간적인 판단력이 요구되는 스포츠에서 대성할 수 없었습니다.

다저스의 혁신을 이끈 브랜치 리키(Branch Rickey) 단장

다저스의 혁신을 이끈 브랜치 리키(Branch Rickey) 단장

그러나 사색하고 관찰하는 그의 버릇은 훗날 단장이 되어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야구 생태계에 대해 오래 고민했던 리키 단장은 당시 존재하지 않던 ‘비고객’을 발견했습니다. 리키는 니그로리그의 인기를 보며 흑인들을 다저스의 팬으로 끌어들이자는 혁신적인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저스는 양키스와의 출혈 경쟁이 너무나도 힘겨웠고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었습니다. 뉴욕의 한 구인 브루클린을 연고로 하는 다저스는 뉴욕 시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양키스와 경쟁해야 했습니다. 양키스의 관중석은 항상 매진이었고, 주머니가 두둑한 양키스는 최고의 선수들을 스카우트했습니다. 좋은 성적이 이어지자 뉴욕 시민들은 양키스에 더욱 열광했고 다저스와의 차이는 더욱 커졌습니다. 다른 팀들이 양키스의 모델을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쓸 때 다저스는 양키스와의 경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른바 블루오션을 찾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흑인 시장에 들어갔고, 서부 지역을 개척했으며, 홈런 위주였던 양키스와 다른 야구를 개발한 것입니다.

혁신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수

다저스의 시도가 지금에야 현명해 보이지만, 인종 차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흑인을 기용하는 것은 매우 불확실한 전략이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치밀한 전략이나 방법론이 아닙니다. 확신과 신념이 있어야 불확실성과 이에 따르는 모호함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처음 해보는 혁신은 조직 전체가 믿고 따라주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리키 단장 역시 혁신적인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략보다 사람이 핵심이라는 점을 알았습니다. 흑인 선수를 기용했을 때 예상되는 반발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니그로리그에서 실력 못지 않게 강인한 인내심과 훌륭한 성품을 갖춘 선수를 찾았습니다. 리키는 로빈슨을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주 훌륭한 흑인 선수를 찾고 있네. 그냥 경기만 잘하는 선수가 아니야. 남들이 모욕을 주고 비난을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여유와 배짱을 가진 선수라야 하네. 만약 어떤 녀석이 ‘이 빌어먹을 깜둥이놈아’라고 욕을 하더라도, 이걸 참아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필요해.” 그리고 선수들이 자신의 전략을 따르게 하기 위해 우선 강한 카리스마로 밀어붙였습니다. 단장의 결정에 반대하는 선수는 누구라도 트레이드 시키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흑인과 같은 팀에서 뛸 수 없다며 반발하던 선수들은 겁을 먹었습니다. 그 다음 리키는 선수단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드로셔(Leo Durocher) 감독에게 선수들을 일일이 설득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레오 드로셔(Leo Durocher) 감독

“착한 사람은 결국 꼴찌를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드로셔 감독은 걸핏하면 심판과 싸우는 다혈질이었습니다. 그런 무서운 감독이 주요 선수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해 로빈슨이 얼마나 괜찮은 선수이며 훌륭한 사람인지 구슬리자, 선수들도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리키 단장을 믿고 따랐던 로빈슨의 인내심에 다저스 선수들은 바뀌어갔습니다. 로빈슨은 팀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한 후에도 라커를 따로 쓰고 백인 선수들이 목욕을 다 마친 후에야 혼자 목욕탕에 들어가 몸을 씻었습니다. 관중과 상대 팀 선수들이 퍼붓는 모욕을 참아내면서도 묵묵히 플레이에 임하자 하나 둘 동료들의 마음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신시내티 원정에서 로빈슨을 도운 피 위 리스는 흑인 영입에 반발하며 항의를 주도한 선수 중 하나였지만, 곧 로빈슨에게 든든한 힘이 돼 주었습니다. 다저스의 새로운 실험이 성공하게 된 건, 선수단이 똘똘 뭉쳐 리키 단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을 때부터입니다. 구단 구성원의 결속이 불확실성과 장애물을 극복하며 변화를 주도하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LA다저스

다저스는 1939년부터 현재와 같은 푸른 빛깔의 옷을 입어왔습니다. 옷 색깔 때문이었을까요. 다저스가 블루오션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도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입니다. 이후 최고의 인기구단으로 탈바꿈한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이 목표라고 공공연하게 말했습니다. 1988년 월드시리즈를 우승하고 오랜 기간 우승이 없었던 다저스는 지난 시즌 이후 단장을 교체하고 주요 선수들을 트레이드했습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전력이 짜임새를 갖췄다고 평가 받는 모양입니다. 류현진 선수가 어서 빨리 어깨 부상에서 돌아와 다저스의 승리를 이끌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병주 프로필

신문과 잡지에 경영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전문가입니다. 오랫동안 기업의 창조와 혁신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평소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글을 쓰고자 노력합니다. 저서로는 <3불 전략>,<촉>,<애플 콤플렉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