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6. 통찰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코코 샤넬과 크리스티앙 디오르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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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6. 통찰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코코 샤넬과 크리스티앙 디오르

작성일2015-06-30 오전 11:16

샤넬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영화 ‘코코샤넬’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아줌마, 이 드레스 어때요? 뉴욕의 모든 양장점을 다 돌았어요. 그렇게 헤집고 다녀도 마음에 드는 걸 못 찾았는데, 며칠 전에야 이런 옷이 있다는 걸 알았지 뭐에요. 오늘 파티에 어울리겠죠?”

1953년 초, 뉴욕의 부잣집 딸인 마리 엘렌이 몇 주간 자기 집에 머물고 있던 어머니의 친구에게 의기양양하게 물었습니다. 진짜 속내는 드레스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게 아니라, 이런 멋진 옷을 고른 자신의 안목을 인정받고 싶어서였죠. 그런데 패션 디자이너였던 어머니의 친구는 그녀에게 혹평을 퍼부었습니다.

“오오, 마리! 진정 이 옷을 입고 무도회에 갈거니? 그렇게 불편한 옷을 입고 제대로 춤이나 출 수 있겠어? 쯧쯧, 색깔하고는. 화려함이 지나치면 천박해지는 거란다. 정말 그렇게 오랫동안 고른 게 고작 이거야? 저리 치워라, 너무 보기 흉하구나.” 그러자 마리 엘렌은 눈물까지 글썽거렸습니다. 우는 것을 보자 ‘어머니의 친구’는 자신의 직설적인 말버릇을 또 한번 탓하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습니다.

“울지 마라. 내가 오히려 무안하구나. 약간 손보면 그런대로 괜찮을 것 같은데.”
“파티가 오늘 저녁이에요. 아주머니께서 고쳐주시면 안돼요?”
“마리, 나는 일을 그만둔 지 15년이나 지났어… 음. 어쩐다? 그래 한번 고쳐보자꾸나.”
갑자기 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이 드레스는 고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약간 손본다고 이 끔찍한 옷이 얼마나 변하겠어. 차라리 다시 한 벌 만드는 게 낫겠어.’

그 순간 저쪽 거실에 있는 빨간색 커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까이 가서 만져보니 실크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몇 시간 후, 마리 엘렌 모녀는 이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드레스에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단순하면서도 모자라지 않고,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아주 독특하고 세련된 옷이 나온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무도회에서 일어났습니다. 미국 최고 명문가의 상속녀들이 모두 마리 엘렌의 드레스에 감탄했습니다. 모두 그 옷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누가 만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날 마리 엘렌은 무도회의 꽃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어머니의 친구가 바로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Gabrielle “Coco” Chanel)입니다. 그녀 나이 일흔 살 때 일이었습니다.

남성 디자이너들과의 싸움

이 일을 계기로 샤넬은 패션 디자이너로 복귀를 결심하게 됩니다. 요리사가 대부분 남자이듯이, 예로부터 패션 디자인계도 남성들이 주름잡고 있는 가운데, 여성 디자이너의 신기원을 이룩한 사람이 샤넬입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사업을 접었고, 독일군 장교와 사귄 일로 15년 가까이 프랑스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샤넬은 늘 파리 패션계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패션계는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디올의 디자인은 이전의 실용적인 복장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뉴 룩(New Look)’이라고 불렸습니다.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은 꽉 조인 허리, 부드러운 어깨선,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내려오는 롱스커트로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내는 디자인입니다. 평소 샤넬은 뉴 룩이 여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디자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친구의 집에서 아직까지 시들지 않은 디자인 감각을 확인하자, 이런 뉴 룩에 대한 불만과 질투가 폭발했는지도 모릅니다.

샤넬 이전의 룩, 오른쪽은 디자이너 푸아레의 드레스다.

샤넬 이전의 룩, 오른쪽은 디자이너 푸아레의 드레스다.

드디어 1954년 2월 5일, 파리의 루이 캉봉가 31번지에 있는 살롱에서 샤넬의 복귀를 알리는 패션쇼가 열렸습니다. 기자, 사진작가, 배우, 예술가 등 유명인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뉴 룩과는 정반대인, 단순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에 사람들은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복귀를 위한 샤넬의 컬렉션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샤넬을 버린 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새로운 패션 디자인을 기다려왔고, 샤넬의 작품에서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열광했습니다. <보그>지는 샤넬의 패션쇼 사진을 몇 페이지에 걸쳐 실었고, 뉴욕의 고급 상점에서는 수백 벌의 의상을 주문했습니다. 미국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프랑스에서도 디자이너로서 샤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듬해 세 번째 패션쇼를 개최했을 때는 유럽에서도 샤넬의 성공은 확실해졌습니다. 뉴 룩을 열렬하게 지지했던 사람들마저 허리에 꼭 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버렸습니다. 샤넬은 불과 1년 만에 크리스찬 디올의 뉴 룩을 완전히 밀어냈습니다. 심지어 디올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1957년 그의 회사를 맡게 된 젊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역시 샤넬을 따라, 입기 편한 의상을 선보였습니다.

디올과 샤넬의 룩 비교

디올(왼쪽)과 샤넬(오른쪽)의 룩 비교

뉴 룩에 대한 승리는 샤넬이 1920년대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였던 푸아레(Paul Poiret)와의 경쟁에서 이긴 것과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푸아레는 귀족과 부자들을 위해서 예술에 가까운 화려한 장식의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에 반해 샤넬은 단순하고 입기 편한 디자인으로 고객을 늘려갔습니다. 푸아레는 저지 같은 값싼 소재를 활용한 샤넬의 제품을 “대부호들에게는 볼품없는 옷”이라고 폄하했습니다.

파리 캉봉가 샤넬 매장

하지만 샤넬이 만든 의상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여성들의 변화된 생활에 더 적합했습니다. 학자, 사업가, 운동선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늘기 시작했고 이들은 편안하고 실용적인 옷을 원했습니다. 푸아레의 옷은 무거운 모직과 뻣뻣한 천으로 만들어져서 행동하기 거북했지만, 샤넬의 의상은 저지처럼 얇은 천을 과감하게 사용해 기능적이면서도 우아했기 때문에, 활동적인 여성의 욕구와 일치했습니다. 그 동안 여성들은 코르셋, 속옷, 심을 넣어서 몸매를 강조하는 옷으로부터 구속 받고 있었는데, 샤넬이 여성의 몸에 자유를 준 것입니다. 샤넬의 눈에 뉴 룩은 푸아레의 화려한 의상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더 늘어난 시대에, 그녀는 뉴 룩의 인기가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샤넬은 시대의 흐름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장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원시 부족 추장의 통찰력

잠시 다른 에피소드를 살펴보겠습니다. 수십 년 전에 영국 탐험가들이 말레이시아 고산지대에서 원시 종족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바퀴조차 없는 문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부족의 추장은 매우 지적이었으며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탐험가들과 말이 잘 통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아주 사려 깊은 인식을 지니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탐험가들은 이 추장을 싱가포르에 데려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탐험가들은 추장을 24시간 내내 데리고 다니면서 문명 세계를 맛보게 했습니다. 선박이며 자동차, 호텔, 아파트, 텔레비전과 전화기 등 여러 가지 원시 사회를 바꿔놓을 수 있는 수많은 신호들을 경험하게 한 것입니다.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셈이었습니다. 그런 후에 추장을 자기 마을로 데려다 주고 지난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어봤습니다.

이병주 샤넬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아 Norman Bosworth

놀랍게도 추장은 그 동안 겪은 경이로운 경험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단 한 장면에만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것만 기억해냈습니다. 그건 수레였습니다. 한 사람이 운반할 수 있었던 바나나보다도 더 많은 바나나를 운반하는 사람을 보았던 기억뿐이었습니다. 그 추장은 높은 건물들이나 거대한 배가 무엇을 연상시키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장사꾼이 바나나를 가득 채운 수레를 밀고 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의 유용성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추장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수많은 도시 문명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입니다.

통찰력은 신념에서 나온다

우리 주변에는 미래 시장 변화에 대한 수많은 시그널들이 널려있습니다. 기술도 좋아져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시그널들은 무의미한 잡음에 그칠 뿐입니다. 통찰력은 시장에 있는 여러 시그널을 분석한다고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해석은 남이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것입니다. 즉 통찰력은 스스로의 생각, 자신만의 열정, 남과 다른 역량에 따라 수많은 시그널 중 하나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19070년대의 코코샤넬

샤넬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의 소녀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지냈습니다. 색깔은 무채색이었고 실용적인 옷이었습니다. 샤넬은 이곳에서 바느질을 배웠습니다. 옷은 편리하고 단순해야 한다는 생각은 단체복을 입던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가졌던 철학이었습니다. 반면, 크리스찬 디올은 비료 사업으로 성공한 부잣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고급 의상실에서 주문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고,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했습니다. 그림을 잘 그렸던 디올은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에게 옷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억압돼있던 여성들의 욕구가 폭발했습니다. 여기에서 코코 샤넬은 활동을 원하는 여성들의 실용적인 욕구를 보았고, 크리스찬 디올은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여성들의 욕구를 본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 가진 생각과 자기만의 스타일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통찰력은 각자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병주 프로필

신문과 잡지에 경영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전문가입니다. 오랫동안 기업의 창조와 혁신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평소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글을 쓰고자 노력합니다. 저서로는 <3불 전략>,<촉>,<애플 콤플렉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