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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7. 조코비치를 세계 최고로 만든 ‘1등 효과’

작성일2015-09-02 오전 9:23

지난 7월 12일 영국 런던에서 올해 세 번째 테니스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의 남자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세계 랭킹 1위인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Novak Djokovic)와 2위인 스위스의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가 2014년에 이어 올해에도 나란히 결승전에 올랐는데요. 2세트까지는 힘과 실력이 팽팽히 맞서서 타이브레이크 승부 끝에 한 세트씩 나눠 가졌지만, 3세트부터 조코비치의 진가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조코비치는 거의 모든 샷에서 실수가 나오지 않았고 결국 3-1(7–6, 6–7, 6–4, 6–3)로 윔블던 2연패를 차지했습니다. 준결승에서 전성기 때의 컨디션으로, 강력한 우승 후보 머레이(Andy Murray)를 가볍게 따돌린 페더러도 조코비치는 힘에 겨웠던 모양입니다.

조코비치

“오늘 노박의 플레이는 엄청났어요. 물론 올해 내내 그랬지만요. 충분히 트로피를 차지할 만 합니다. 오히려 끝으로 갈수록 바위처럼 단단해지더군요. 오늘 제 플레이는 절대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결과에 만족합니다. 원래 경기란 게 그런 거잖아요.”

140년 테니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 받는 페더러조차 조코비치의 기세를 누를 수 없다는 걸 인정한 것입니다. 이제 조코비치는 모든 동료들이 두려워하는 선수가 되었는데요. 사실상 조코비치는 2011년부터 세계 테니스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2013년에 클레이코트의 황제로 불리는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근소한 차이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5년간 조코비치가 테니스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금 액수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조코비치는 2011년부터 매년 1천만 달러가 넘는 상금을 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올해에도 큰 대회의 대부분을 싹쓸이해 8월에 이미 상금 액수가 1천만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한 해 1천만 달러가 넘는 상금을 탄 경우는 나달이 2회, 페더러가 1회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상금이 훨씬 많은 골프대회에서 ‘황제’ 타이거 우즈가 1천만 달러를 넘긴 해도 3회 밖에 안 되는데요. 조코비치는 올해 윔블던까지 통산 54승, 메이저 대회 9승을 기록했지만, 상금 액수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10년 데이비스컵 우승으로 1등 효과를 맛봐

사실 조코비치는 스무 살이었던 2007년부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당시 여러 큰 대회를 우승하며 세계 랭킹 3위까지 재빠르게 올라갔지만, 그는 좀처럼 최정상까지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한 대회에서 우승하면 다른 대회에서는 손쉽게 탈락하기도 해 1%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조코비치. 랭킹이 낮은 선수에게 무기력하게 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중요한 대회에서 페더러나 나달을 만나면 그들의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처럼 만년 3위 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2011년에 무려 41연승을 기록하며 7개 대회를 연속 우승하기 시작했고 갑자기 세계 랭킹 1위로 올라섰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 이전과 테니스 실력에서 엄청난 향상을 보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는데요. 주무기도 같고 전략이나 스타일도 변하지 않았는데 성적이 월등히 향상된 조코비치에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2011년 호주오픈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조코비치

2011년 호주오픈테니스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조코비치

2006년부터 그와 일하고 있는 바이다(Marian Vajda) 코치에 의하면, 모든 건 2010년 연말에 벌어진 데이비스컵 우승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1년 동안 이어지는 데이비스컵은 단식 4게임과 복식 1게임을 치르는 국가대항전인데, 세르비아는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조코비치는 2010년 내내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를 가까스로 우승시키며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도 우승한 적은 있지만 조코비치는 이 대회에서 비로소 우승의 참맛을 보았는데요. 바이다 코치가 조코비치 곁에서 그의 이런 변화를 생생하게 지켜봤습니다.

“모든 게 2010년 데이비스컵 우승에서 시작됐어요. 그 우승이 그에게 커다란 동기를 갖게 한 것 같아요. 그는 그 겨울에 2주밖에 쉬지 않고 혹독한 연습을 하기 시작했어요. 엄청난 연습량이었죠. 그렇지만 오히려 그걸 즐기더군요. 체력도 강해졌지만 무엇보다 멘탈이 좋아졌어요. 그 이후 그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돼 있었어요”

바로 조코비치에게 ‘1등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 동안 그는 실력에서 이미 준비돼 있었지만 그에 걸맞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던 것이죠. 그러나 힘겨운 상황에서 우승을 제대로 경험하면서 몇 가지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자신감으로 과감한 시도

1등을 경험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생깁니다. 오랜 전에 심리학자들이 재미있는 동물실험(McDonald 등, 1968*)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실험에서 연구자들은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그린 선피시(green sunfish) 한 무리를 사흘 동안 관찰하면서 어느 물고기가 지배적이고 어느 것이 순종적인지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지배적인 물고기들만 뽑아서 세 집단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집단은 혼자 따로 있게 했고, 또 한 집단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물고기 한 마리와 함께 있게 했으며, 나머지 한 집단은 덩치가 작은 물고기 한 마리와 같이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닷새 동안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런 후에 이 물고기들을 원래 있던 어항으로 옮긴 다음 이들의 공격성을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극명하게 나타났는데요. 덩치가 큰 녀석과 닷새 동안 생활했던 물고기는 패자로 살아야 했던 경험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낮은 공격성을 보인 반면 덩치가 작은 녀석과 생활했던 물고기는 예전보다 훨씬 강한 공격성과 지배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1등 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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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을 경험하게 되면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보다 많이 분출됩니다. 이 호르몬은 뇌 속에서 도파민 수치를 높여서 더 과감해지고 긍정적으로 변하며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한계점도 높아지는데요. 조코비치 역시 2010년 데이비스컵 우승 이후로 플레이가 더 과감해졌습니다. “페더러, 나달과 한 시대에 태어나 테니스를 하게 돼 지독히도 불운이다”라고 탄식했던 조코비치였지만, 이제는 페더러나 나달을 만나도 기죽지 않고 공격을 주도하는 조코비치는 특히 2011년 당시 세계 랭킹 1위였던 나달을 완벽하게 공략했습니다.

나달은 빠른 발과 강한 탑스핀으로 에러가 나지 않는 스트로크를 구사하기 때문에 웬만한 공격은 모두 받아내는 수비의 천재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페더러를 포함해 나달의 수비를 뚫은 선수는 없었습니다. 조코비치는 나달과 맞서 코트 안으로 한발 더 들어가 거세게 공격하기 시작했고, 왼손잡이인 나달의 포핸드를 향해 조코비치는 자신의 주무기인 백핸드로 강하게 공격하자 나달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결승전에서만 6번 만났는데, 처음에는 나달에게 가까스로 이겼지만 나중에는 손쉽게 승리해 나달을 위축시키는 징크스를 만들기도 하며 나달이 강점을 보인 클레이코트에서까지 완벽하게 이겨 나달의 천적이 되었습니다.

자존심으로 일정한 성과를 확보

둘째, 1등을 하면 1등만의 자존심이 생깁니다. 연세대학교의 신동엽 교수가 우리 나라 출신의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창조성의 원천을 찾는 작업을 수행했는데요. 그런데 이들은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들 모두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건데요. 그래서 열정이 식을 때나 슬럼프가 왔을 때도 지속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명감이 바로 ‘나는 다르다’ 라고 하는 최고만이 지닌 자존심이죠.

1등을 하면 1등만의 자존심이 생긴다.

1등의 자존심은 열정이 식을 때나 슬럼프가 와도 지속적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한다.

프로 골퍼들도 비슷합니다. 국내대회 탑 5에도 가끔씩 드는 한 선수가 이런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골프선수들은 연습을 같이 하니까, 가끔씩 점심 내기로 골프를 친다고 하는데요. 거기서 우승한 유명 선수들을 많이 이긴다는 것 입니다. 비록 내기 골프지만 선수들은 서로 봐주지 않고 치열하게 시합을 하기 때문에 실력 차이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고 한다. 비슷한 선수들인데, 한번 우승을 하게 되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승을 경험한 선수는 좀처럼 탑10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한다는 것인데요. 컨디션이 안 좋아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바로 자존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조코비치도 2010년 이후 확실히 달라진 것이, 대회에서 초반에 탈락하는 경우가 없어진 것인데요. 2011년부터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만 8강에 그쳤고 모두 준결승 이상의 높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조코비치의 경기를 보면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내가 1등인데 너한테 질 수야 없지’라는 생각으로 싸운다는 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끈기로 힘든 장애물을 극복

셋째, 1등을 하면 끈기도 생깁니다. 그래서 힘든 과정을 잘 넘기게 됩니다.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우선 이 고비만 넘으면 목표점, 성공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잘 참게 되는 인지적 끈기입니다. 마지막 한 고비를 못 넘고 포기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대부분 이걸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100여 년 전 남극 탐험에서 발생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극점에서의 스콧 탐험대

남극점에서의 스콧 탐험대

영국의 스콧 일행은 노르웨이의 아문센 팀보다 남극에 늦게 도착한 후 베이스캠프를 향해 힘겹게 나아갔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베이스캠프는 나타나지 않았는데요. 결국 그들은 동상과 체력 저하로 귀로를 포기하고 텐트에서 최후를 맞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포기한 장소가 베이스캠프에서 18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루 행군 거리도 안 되는 길이입니다. 목표 지점이 그처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스콧 일행이 알았더라면 어떻게든 힘을 내어 도착했을 것입니다.

다음이 의지적 끈기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자존심이 의지적 끈기를 만드는데요. 내가 클래스가 다른 사람인데, 이런 역경에 굴복할 수야 있나,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등이 끈기를 만든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흔히 끈기가 있어야 성공한다고 알고 있는데, 성공 경험이 끈기를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조코비치가 그랬습니다. 2010년 이전에는 기권하거나 위기를 맞게 되면 포기하는 경기가 많았다고. 그런데 2010년 데이비스컵 우승 이후엔 달라졌습니다. 가령 이듬해인 2011년 US 오픈을 우승할 때 수없이 자신을 눌렀던 페더러를 준결승전에서 만나서 2세트를 준 이후에 내리 3세트를 따내 승리한 것. 그리고 2012년 나달과의 호주 오픈 결승전도 그랬습니다. 마지막 세트에서 2-4까지 몰리다가 역전해서 7-5로 승리해 우승했던 것. 이 경기는 5시간 53분을 기록해 메이저 대회 결승전 중 가장 긴 시합이 됐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두 선수는 다리에 쥐가 나 시상식에서 서있지 못해 의자에 앉아 수상하는 기이한 장면을 연출했으니까요.

작은 1등의 가치

이처럼 1등 효과는 대단합니다. 물론 1등을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1등이 처음부터 거창한 성과를 거두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작은 곳에서부터 1등을 경험한 후 영역을 넓혀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구성원들을 동기부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작더라도 그들이 잘하는 걸로 1등을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조직 내에서 Small Success를 가능한 많이 만들면 조직은 한순간 도약할 것입니다.

작은 성취의 경험이 큰 도약을 만든다.

작은 성취의 경험이 큰 도약을 만든다.

사실 데이비스컵이 그런 대회입니다. 데이비스컵은 국가를 위해 뛴다는 자부심은 있지만, 상금도 없고 랭킹 포인트도 적어서 프로선수들은 그렇게 중요한 대회로 여기지 않는데요. 그래서 탑 랭커들은 한두 번 참가한 후 부상이나 빡빡한 경기일정을 핑계로 빠지기 일쑤입니다. 조코비치가 세계 최고로 도약한 것은 데이비스컵 우승이라는 작은 1등에서부터였습니다. 그러니 조코비치에게 데이비스컵은 작은 대회로 기억되지 않겠죠. 그를 진정한 챔피언으로 도약시킨 큰 대회로 여길 것입니다. 작은 성공은 1등 효과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결코 작게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요.

* McDonald, A. L., Heimstra, N. W. & Damkot, D. K. 1968. “Social modification of agonistic behaviour in fish.” Animal Behavior, 16, 437-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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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 프로필

신문과 잡지에 경영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전문가입니다. 오랫동안 기업의 창조와 혁신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평소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글을 쓰고자 노력합니다. 저서로는 <3불 전략>,<촉>,<애플 콤플렉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