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8. 분노의 화신 스티브 잡스, 그의 혁신도 분노로부터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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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8. 분노의 화신 스티브 잡스, 그의 혁신도 분노로부터

작성일2015-10-23 오전 10:08

2011년 10월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흡사 연예인 같은 인기로 그의 투병에 세계 도처에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잡스의 생부는 누구보다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늦기 전에 그 아이가 제게 찾아와서 커피라도 한 잔 하면 얼마나 좋을까, 늘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너무 늦기 전에 말이죠.”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들에게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아들을 포기하고 입양 보낸 것을 후회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나 잡스는 죽을 때까지 그의 생부에게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생부에 대해 냉담하게 말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나의 정자은행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스티브잡스

이와 관련해 의심할 만한 게 있습니다. 잡스가 사망하자 출간된 공식 전기에도 잡스의 친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900쪽이 넘을 정도로 두꺼운 이 책에는 잡스와 짧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의 일화도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전기 전문 작가인 저자는 잡스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을 대부분 만났습니다. 그런데도 생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은 잡스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잡스는 죽기 전까지 생부를 용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잡스는 양어머니가 사망하자 생모와 여동생을 찾았고, 이후 그들을 가끔씩 만났습니다. 그러나 생모와 여동생을 버리고 이혼했다는 이유로 생부에 대한 원망은 평생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성공했는데도 말이지요.

이처럼 잡스는 평생 분노의 감정을 품고 살았습니다. 분노에 관한 그의 일화는 너무 많습니다. 회의 도중 뛰어난 부하직원이 자기가 써놓은 화이트보드에다 다른 의견을 더했다는 이유로 해고한 일은 아주 유명합니다. 분노는 그의 행동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감정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분노와 불만이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혁신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못했던 잡스

이런 잡스의 성격을 알면 그에 대한 의문 하나가 풀립니다. 퍼스널 컴퓨터 산업을 새로이 개척했던 잡스는 프로그래밍을 할 줄 몰랐습니다. 실제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출발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잡스가 프로그래밍을 못한다고 종종 얕잡아보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잡스는 무엇이 고객에게 통하는지 놀라운 직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컴퓨터 기술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었어요.”

잡스는 실리콘밸리에서 자랐습니다. 이웃집 차고를 들락거리며 엔지니어들에게 전자기기 조립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회로를 만져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동호회에서 컴퓨터광들과 어울렸습니다. 대학을 중퇴한 후에도 컴퓨터 전문가들이 지식을 교류하는 클럽에 나갔습니다. 대개 컴퓨터 마니아들은 전공과 상관없이 어릴 때부터 프로그래밍 기술을 익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그는 수학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습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컴퓨터 기술을 배우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요?

잡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캘리포니아 로스알토(Los Altos)의 집. 이 집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가 탄생했다. (이미지 출처: 플리커 Mathieu Thouvenin)

잡스가 어린 시절을 보낸 캘리포니아 로스알토(Los Altos)의 집. 이 집의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가 탄생했다.
(이미지 출처: 플리커 Mathieu Thouvenin)

아마도 컴퓨터 천재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면서 컴퓨터 기술에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 워즈니악은 어려서부터 미국 과학경시대회를 휩쓴 천재였고, 컴퓨터 마니아였습니다. 그는 미국 내 누구와 겨루어도 실력이 뒤지지 않았습니다. 잡스는 컴퓨터 기술로는 워즈니악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분노를 안고 살았던 잡스는 승부욕도 남달랐습니다. 지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고 항상 1등이 돼야 했습니다. 만약 최고와 싸워 이길 수 없다면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한때 잡스는 수영에 빠져 클럽에 가입해 활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수영은 잡스가 최고가 될 수 있는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수영팀에서 함께 활동했던 한 친구는 “스티브는 경기에서 지면 분에 못 이겨 울부짖곤 했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얼마 후 잡스는 수영을 그만두었고, 평생 운동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잡스가 워즈니악을 만난 후 회로 설계나 프로그래밍은 아무리 잘해봤자 2등밖에 못한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 대신 잡스는 워즈니악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디자인에 끈질기게 집착하고 몰두했습니다.

 경쟁보다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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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이 아니면 다른 길을 가는 잡스의 이런 기질은 과거 애플의 전략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개척했지만, 기술과 자본을 지닌 IBM이 PC 사업에 진출하여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IBM은 부품 표준화와 소프트웨어 호환성이라는 PC 업계의 게임 룰을 만들며 맹주를 자처했습니다. 이때 애플은 IBM이 주도하는 방식을 버리고 독자적인 표준으로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물론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별로 없어서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IBM을 따라 했다면 아무리 잘해도 2등밖에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게 싫어서 잡스는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했습니다. 그의 분노와 지나친 승부욕이 차별화로 이어진 것입니다.

 문제 해결보다 문제 발견

이 밖에도 분노가 혁신의 토대가 될 수 있는 것 문제 발견을 쉽게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불만과 불합리성을 자각하지 않으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분노해야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분노는 두뇌를 활성화시켜 일정한 틀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보게 만듭니다.

네덜란드의 심리학자들(Matthijs Baas, Carsten De Dreu, Bernard Nijstad, 2011)이 이와 관련한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분노했던 경험, 슬프게 만들었던 일화, 평범한 어린 시절 이야기에 대해 에세이를 쓰게 한 것입니다. 에세이를 쓰면서 참가자들은 그룹별로 분노, 슬픔, 중립적인 감정을 갖게 됐습니다. 그런 후 그들에게 정해진 시간 동안 환경 보호와 관련한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종이에 쓰게 만들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이 도출한 아이디어를 환경 분야의 전문가에게 의뢰해 분야를 범주화했습니다. 50가지 분야에서 300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결과를 비교해보니, 분노의 감정 상태에 있던 참가자들이 아이디어를 더 많이 냈고, 틀에서 벗어난 사고를 했으며, 더 독창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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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분노 상태의 참가자들이 낸 아이디어의 개수가 더 많았습니다. 이들이 틀에서 벗어난 유연한 사고를 했다는 사실은 범주를 넘어서는 아이디어를 도출했다는 말입니다. 슬픔의 감정에서 아이디어를 도출한 참가자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낸 후 그것과 관련된 후속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만들어냈는데 반해, 분노 그룹은 범주를 넘나들며 아예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냈습니다. 또 저자들은 전체 아이디어 중 1% 미만의 소수 견해를 독창적이라고 봤는데, 분노 감정의 참가자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더 많이 냈습니다. 즉 분노가 고정관념이나 상식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보게 만든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수동적 감정인 슬픔이나 걱정은 사람을 움츠러들고 조심스럽게 만들지만, 적극적인 감정인 분노나 화는 기분을 활성화시키고 공격적으로 만들지요. 그래서 주변 환경을 불확실하게 보지 않고 주도적인 태도를 갖게 합니다. 이런 마인드로 인해 주변 상황을 분석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영역을 넘나들며 관심을 확장시키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사고의 체계성은 떨어지지만 시각이 넓어져 다른 것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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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잡스는 맥의 판매 증대에 관심이 있었지, MP3 플레이어를 만들 생각은 없었습니다. 음악파일 관리 프로그램인 아이튠스를 맥에 장착해서 판매하면 나머지는 소비자의 소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잡스는 소비자가 아이튠스를 활용해서 디지털 음악을 편리하게 소비하는지 직접 경험해봤습니다. 그런데 시중에 나와 있는 제품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쓰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 정말 모두 후졌어.” 그는 분노했습니다. MP3 플레이어의 문제점이 금방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의 MP3 플레이어는 메모리가 부족해서 담을 수 있는 노래가 기껏해야 20곡을 넘지 못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복잡한 사용법이었습니다. 버튼을 몇 번씩 눌러야 원하는 노래를 겨우 찾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불편함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지만, 화가 난 잡스는 문제점을 쉽게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MP3 플레이어를 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평소 문제를 해결하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문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혁신가들은 공통적으로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결국 해결되게 돼 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도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를 발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문제 발견을 이끌어내는 분노와 불만은 혁신을 일으키는 도화선이자 방아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잡스는 투병 중에도 투덜대고 화내는 기질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폐 전문의가 그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려 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벗겨내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쓰기 싫다고 화를 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마스크를 여러 개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그의 아내가 다독여서 겨우 마스크를 씌웠습니다. 잡스는 죽기 전까지 분노와 불만의 기질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병주 프로필

신문과 잡지에 경영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전문가입니다. 오랫동안 기업의 창조와 혁신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평소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글을 쓰고자 노력합니다. 저서로는 <3불 전략>,<촉>,<애플 콤플렉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