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트렌드로 보는 미래] #1. 인공지능은 예술을 할 수 있을까?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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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트렌드로 보는 미래] #1. 인공지능은 예술을 할 수 있을까?

작성일2016-05-25 오전 9:59

2016년 3월, 국내를 비롯한 세계 IT 업계 최대의 이슈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이었습니다. 대국 전 이세돌 9단의 쉬운 승리를 예상한 것과 달리, 알파고가 4:1로 대승을 거두자 대중은 꽤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최근 급격히 발전한 인공지능 기술이 인류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줄 거라는 낙관과 함께 인류의 위기를 걱정하는 비관들도 나타났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미래를 속단하기는 어렵고 앞으로의 미래는 두 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있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 우리가 그 동안 겪어보지 않은 크기와 속도의 변화가 많은 분야에서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

현재까지 산업에서 적용되고 있는 인공지능은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제한된 일을 수행하는 ‘약인공지능(Weak AI)‘입니다. 이것은 자산관리를 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CT/MRI 영상 판독을 보조하는 의료 소프트웨어, 증거개시(증거로 쓰일 수 있는 자료를 찾는 일 – 초임 변호사들의 주 업무)와 판례를 대신 찾아주는 법무 보조 소프트웨어, 기업의 공시 관련 기사를 자동으로 작성해주는 로봇 등 전문직의 특수한 단순업무를 대신/증진하는 형태로 가치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노동시장에서 인간이 기계에게 점차 자리를 빼앗기는 데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이제껏 겪어왔던 산업과 기술혁명을 통해 보았듯이 사회의 적절한 대응과 함께 새로운 경제/산업의 성장이 뒷받침된다면 미래가 그리 비관적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알파고의 승리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느낀 공포감은 단순히 노동시장의 변화 때문만은 아닙니다. 영화 ‘터미네이터’처럼 기계가 자아를 갖거나 초지능적인 능력이 생겨 인간을 위협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분명 있을 텐데요. 이것을 ‘강인공지능(Strong AI)‘라고 합니다. 기계가 자의식을 통해 자발적으로 학습하고 생각하며 때로는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개념입니다. 아직은 이론적인 개념이고 실제로 구현이 될지, 또 그 것이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는 알기 어렵지만 약인공지능이 점차 범용성을 늘려간다면 강인공지능으로 발전하는 것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그 때를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합니다.

영화 터미네이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터미네이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강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직 먼 이야기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이 둘의 경계는 분명 모호해질 것이고 언젠가는 이에 대한 법률과 사회의 동의가 필요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인공지능의 인격체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며, 공공의 가치관이 기술의 보편화에 얼만큼 적응하는가에 달린 사안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점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인공지능이 하나 하나 할 수 있는 때가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노동, 창작, 자의식, 번식과 같은 행위들 말이죠.


이제까지 인공지능의 이슈는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이었다면, 그 다음 이슈는 어쩌면 창작이 아닐까요? 이 글에서는 음악, 영화, 미술 등의 예술영역에서 나타나는 인공지능 사례들을 살펴보며 인공지능이 예술가로 인정받게 되는 미래를 상상해보고, 과연 인공지능이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예술은 노동” – 프로세서의 역할

예술 창작은 많은 양의 노동을 필요로 합니다. 자르기, 붙이기, 찾기, 버리기와 같은 단순노동부터, 색 조합(미술/디자인), 화성학과 코드변주(음악), Shot Variation(영화)와 같이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노동까지, 사실 창작은 시간과 체력의 싸움일 때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예술 창작 과정의 상당 부분은 인공지능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죠.

1950년대부터 연구되어 오던 인공지능 기술이 최근 10여 년간 급격히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3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연산처리능력의 폭발적 성장입니다. 70년대를 기준으로 현재의 컴퓨터는 약 50만 배 빨라진데다, 알파고의 경우에는 1,000개가 넘는 CPU/GPU를 사용해 총 3,000만 개의 기보를 학습하고 하루에만 3만 번 이상의 대국을 치렀다고 합니다.

예술 분야에서도 효율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는데, 특히 영화(동영상을 매체로 내러티브를 전달하는 모든 형태 포함)의 경우엔 그 제작 기간과 노동력의 규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컴퓨터의 개입 여지가 무궁무진합니다. 실제로 현존하는 다양한 영상편집 툴은 음향 조절, 색 보정, 사운드/비디오 결합, 파일 분류 등의 기능들을 매우 약한 인공지능으로 자동화하고 있습니다. 음악 또한 그 제작 방식이 대부분 디지털화되어서 많은 기능들이 점차 자동화되고 있는데요. 물론, 이 정도는 ‘예술가’라기보단 ‘제작팀 막내’ 혹은 ‘지망생’ 정도의 능력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지망생이 좋은 경험과 작품을 얼만큼 접하느냐에 따라 그만의 ‘감각’이 생기고 예술가로서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지 않을까요?

“예술은 패턴의 조합” –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역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창작을 달리 표현하면 세상에 흩뿌려진 수많은 정보들을 재조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술 작품에서 느끼는 작가의 ‘감각’ 또는 ‘철학’도 엄밀히 말하면 예술가의 머릿속에 있는 세상에 대한 정보들이 나름대로 정제/수렴된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고 그 안에서 데이터 간의 관계, 즉 패턴을 찾아 새로운 통찰을 만드는 것이 기본 구조인 인공지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기계도 인간의 감정이나 감각을 학습을 거쳐 통계적으로 출력해낼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또 다른 기폭제는 빅데이터와 딥러닝 기술의 발전이었습니다. 컴퓨터의 보급과 산업 디지털화, 그리고 클라우드 컴퓨팅의 확대가 데이터의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가능케 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생성/유통되는 디지털 데이터의 양이 2005년에 0.13 제타바이트(1 제타바이트 = 10억 테라바이트) 에서 2015년에는 8.59 제타바이트, 그리고 2020년에는 무려 40 제타바이트 이상이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양적 성장을 뒷받침하는 딥러닝 기술은 이 데이터들 안에서 효율적으로 패턴을 찾고 통찰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합니다.

프로그래머가 수없이 많은 규칙들을 주입해야 했던 기존의 기계학습 방식을 벗어나 컴퓨터가 인간의 뇌처럼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바둑에는 총 10의 170제곱 가지 경우의 수가 있지만, 알파고는 그 모든 경우를 다 고려할 필요 없이 중요한 수와 그렇지 않은 수를 스스로 분리하며 바둑을 두었습니다. 마치 인간이 하듯 말입니다.

음악은 타 예술과 달리 음정과 박자라는 명확한 요소와 규칙이 존재하고 패턴의 경우의 수가 (크긴 하지만) 유한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게 학습시키기 용이하고, 게다가 제작과 유통이 이미 모두 디지털화되어 데이터도 많습니다. 이러한 요인들 덕분에 인공지능은 음악에서 가장 활발한 성과들을 보이고 있는데, 기계적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연주나 노래와 같은 Performance를 제외한 작곡, 편곡, 믹싱, 마스터링(음원 제작의 후반 작업으로, 소리들의 밸런스, 음량, 음색 등을 조정하는 과정)과 같은 창작 영역에 인공지능이 그 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는 인공지능 작곡가 ‘쿨리타(Kulitta)’가 있습니다. 예일대학교 컴퓨터 공학교수가 개발한 이 프로그램은 바흐의 모든 곡을 분석한 지식과 통찰을 바탕으로 바흐 스타일의 새로운 음악을 몇 초 만에 작곡할 수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100명 이상이 쿨리타의 곡이 인간의 작품이라고 평가했을 만큼 완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산업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을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최적화된 믹싱과 마스터링을 자동으로 해준다거나(Landr.com), 유튜버들을 위해 동영상에 알맞은 BGM을 자동 생성해주는(jukedeck.com) 등의 다양한 상업용 인공지능 응용 프로그램들이 해외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경우 아직 인공지능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행보는 없지만, 그것을 가능케 할 만한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인지기술의 시각을 담당하는 ‘컴퓨터 비전’ 기술이 최근 들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것입니다. 이 또한 딥러닝의 발전 덕분인데요. 동영상 혹은 카메라 안의 그림을 인지할 수 있다는 건 그 시각적 데이터를 정제할 수 있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패턴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영화의 ‘이야기’라는 매우 추상적인 요소를 제외한 촬영과 편집의 영역에서는 인공지능이 할 일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미술도 예외는 아닙니다. 데이터의 끝판왕 구글은 그들의 독보적인 수준의 이미지 인지기술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구글은 자신들이 개발한 인공지능 엔진이 그림을 인지하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하고자 역으로 그림을 그려보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특정 사물의 이미지를 받으면 컴퓨터는 그에 ‘영감’을 받아 추상화를 그리도록 한 것이죠. 그런데 그 결과물들은 분명 인공지능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본다면 놀라울 정도로 해학적이고 예술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이 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르주 쇠라의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왼쪽), 소프트웨어 Matthew McNaughton에 의해 처리된 이미지(오른쪽) (이미지 출처: Google Research Blog)

“예술은 엔터테인먼트” – 우리의 역할

두산백과에 따르면 예술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이라는 고전적 정의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예술의 의미 또한 진화를 해왔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예술엔 ‘작품=작가’라는 공식이 절대적이었다면,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며 작품과 작가의 연계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 작품에 다수의 인력이 투입되거나 분업이 세분화 되기도 하고 저작물의 복제가 쉬워졌다는 점도 한 몫 했습니다. 결국 우리는 지금 어떤 창작물이 예술인가의 질문에 “누구의 작품인가?”에 대한 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예술 분야를 ‘엔터테인먼트’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음악 시장의 경우, 지난 10여 년 간 음반에서 음원으로, 또 소유(구매)에서 소비(스트리밍)으로 매우 빠르게 시장의 형태가 변했고, 이로 인한 수동적 소비 트렌드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제작자들은 남들보다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대중의 취향에 부합해야 하는 경쟁 속에 놓일 것이고요. 이러한 환경에서 소비자의 호불호를 음적/박자 단위로 파악하고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는 인공지능의 음악이 나온다면, 음원차트를 점령당하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인공지능이 다양한 예술 분야에 적용되고 그 작품들이 환영 받는 미래가 마치 인류 멸망 SF의 전조가 될 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맞아, 우리가 한번쯤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는 미래의 작은 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미덥 프로필

LG경제연구원에서 사업전략을 연구합니다. 상술보다는 기술, 숫자보다는 예술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