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11. 레스터 시티 우승의 비결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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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11. 레스터 시티 우승의 비결

작성일2016-07-11 오후 3:40

작년 11월 28일 레스터 시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홈으로 불러서 14라운드 경기를 치렀는데요. 전반 23분 레스터 시티의 미드필더는 골키퍼에게 받은 공을 재빠르게 몰고가 단 한 번의 긴 공간 패스로 제이미 바디에게 차주었고, 바디는 그걸 강슛으로 만들었습니다. 불과 몇 초 동안 이어진 공격이었죠. 바디는 11경기 연속 골을 성공시켜서 프리미어리그 신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공교롭게도 맨유의 예전 공격수 판 니스텔로이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깬 것입니다. 판 니스텔로이도 경기를 본 모양입니다. 그는 트위터에 “잘했어, 바디. 이제 네가 넘버원이야. 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라고 올렸습니다.

제이미바디_완성본

동화 같은 레스터 시티의 우승

바로 이것이 지난 2015-16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나타난 이변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무려 5천분의 1 확률,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두 시즌 올라와 겨우 버티다가 강등을 당하곤 했던 레스터 시티가 세계 최고의 리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최종 성적은 23승 12무 3패, 승점 81점으로 2위 아스널과의 승점 차이가 무려 10점이나 났습니다. 레스터 시티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 승격되어 가까스로 강등을 넘겨 살아 남았습니다. 창단한 지 132년이나 지났지만 레스터 시티는 2부 리그가 더 친숙한 그런 팀입니다.

이병주 레스터시티

실제로 연고지인 레스터는 영국 중부의 인구 30만 명을 조금 넘는 아담한 시인데요, 문제는 주변에 다른 도시도 없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마켓이 작다는 얘기인데요. 실제로 92년 출범한 프리미어리그의 우승은 94-95 시즌의 블랙번을 제외하면 모두 런던이나 맨체스터에 있는 팀들이 차지했습니다. 130년 영국 축구 역사상 3번 이상 우승한 팀도 블랙번을 제외하면 모두 대도시에 위치한 팀이었습니다. 빅 마켓이어야 돈도 잘 들어오고, 선수 수급도 좋으니까 당연합니다. 한 마디로 레스터 시티는 가난한 집이란 겁니다. 당연히 돈도 별로 없습니다. 좋은 선수를 보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레스터 시티가, 어떻게 돈 많은 부잣집 구단을 이겨내고 최정상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더 많이, 더 빨리”

당연히 두 배 이상 열심히 뛰었습니다. 가진 게 없으니 일단 더 노력해야겠죠.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선수들을 막아내기 위해서 1:1 정면 대결을 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두세 명이 틀어막았죠. 매 경기 상대 팀보다 더 많이 뛰었습니다. 지난 시즌 게임 당 태클이 22.9개로 다른 팀보다 압도적으로 큰 차이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레스터 시티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말해줍니다.

라니에리감독_완성본

여기에다 2014-15 시즌보다 조직력이 좋아졌습니다. 지난 시즌 수비축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라니에리 감독이 부임해서 체계적인 수비 조직력을 가르쳤습니다. 선수들은 공을 중심으로 25미터의 사각형을 그리면서 함께 움직이게 됐습니다. 씨줄과 날줄처럼 운동장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가 상대의 패스가 느슨해지면 재빠르게 낚아채 역습을 했습니다. 게임당 가로채기 통계가 이를 증명합니다. 매 게임마다 21.6개의 가로채기를 했는데, 20개를 넘는 팀이 거의 없습니다. 즉 레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더 많이, 더 빨리, 더 열심히’ 뛰었습니다.

허를 찌르는 창의적인 공격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흔히 돌풍을 일으키는 팀들이 대부분 열심히는 뜁니다. 탄탄한 수비력과 조직력으로 상위 팀들한테 지지 않아서 돌풍을 일으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위 팀들도 쉽게 이기지 못해서 순위가 점차 하락하게 됩니다. 이점에서 레스터 시티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지난 시즌 68골로 맨체스터 시티의 71골, 토트넘의 69골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골 순위 3위를 차지할 정도로 공격도 강하게 펼쳤습니다.

바로 라니에리 감독이 묘안을 짜냈기 때문입니다. 레스터 시티는 주로 공격과 수비가 바뀌는 어수선한 시점을 택해 집중적으로 공격을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디의 골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양 팀 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순간에 공을 돌리지 않고 몇 초 만에 빠르게 공격을 끝내는 것입니다.

선수들_완성본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들의 공격 전술은 대부분 이와 반대입니다. 공격과 수비가 바뀌는 순간에는 일부러 패스를 통해 경기 템포를 조절합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티키타카 전술인데요, 스페인의 강팀 바르셀로나에서 만들어져서 세계 축구계를 호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페인 축구를 세계 최고로 올려놓은 전술입니다. 티키타카 전술로 바르셀로나의 역사를 만든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2015-16 시즌까지 3년 동안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지도했는데요, 거기서도 이 전술을 전파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에서 이 전술을 확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강팀들이 템포를 조절하는 티키타카 전술을 쓰는 건 당연합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기술 좋은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를 합니다. 즉 서로 약점이 노출되는 순간에는 싸움을 피하고, 오직 정면대결을 하자는 것입니다.

반면에 라니에리 감독의 의도는 서로 취약할 때 싸우자는 것이죠. 정면대결로는 부잣집을 이길 수 없으니까, 둘 다 약해졌을 때 힘을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패스 성공률이 70.5%로 리그에서 꼴찌 2등입니다. 시즌 내내 꼴찌를 차지하다가 마지막에 꼴찌를 겨우 면했습니다. 패스 성공률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짧은 패스가 적고 길고 어려운 패스를 많이 했다는 말입니다. 또 볼 점유율도 44.8%로 꼴찌에서 3등입니다. 리그 우승을 놓친 아스널이 56.9%로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과 차이가 큽니다. 즉 레스터 시티는 상대방에게 볼을 점유하도록 놔뒀다가 결정적 순간에 역습을 많이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레스터 시티의 골은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역량 극대화가 필수

이를 위해 라니에리 감독은 선수 개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자원이 적으니까요. 가령 이전 시즌 5골밖에 기록하지 못했던 바디가 올해 24골로 토트넘의 공격수 해리 케인의 25골에 이어 아깝게 2위를 차지했는데요. 이 정도로 골이 폭발한 이유는 포지션을 바꿔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전에는 왼쪽 윙으로 스스로 돌파해서 공격을 했지만, 지금은 최전방 공격수로 마무리만 담당합니다. 리그에서 가장 빠른 바디는 공간을 만들기보다 침투하는 데 뛰어나고 골 결정력도 높기 때문입니다.

레스터 시티_이병주

라니에리 감독이 들어오면서 기존 코치진을 그대로 승계한 것도 선수들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발기술이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았던 마레즈를 기회를 만드는 데 활용했습니다. 상대의 허를 찌르는 역습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은골로 캉테처럼 각국 2-3부 리그에 숨겨져 있던 발 빠르고 젊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해서 조련했습니다. 그 결과 리그에서 가장 빠른 팀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기술보다는 속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적은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부족하다는 것의 가치

예전에 평소 존경하던 노학자를 찾아 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옛날에는 책도 많이 봤는데, 이젠 눈이 침침해져서 책 읽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야. 그런데 그게 말이야. 이젠 생각을 더 많이 하라는 뜻인 거 같아.”

그렇습니다. 무언가 부족하면 다른 걸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경쟁은 심해지는데 가진 게 없어서 부족하다고 느끼십니까? 그건 창조적인 묘안을 짜내야 할 절호의 기회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레스터 시티처럼 말입니다.

이병주 프로필

신문과 잡지에 경영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전문가입니다. 오랫동안 기업의 창조와 혁신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평소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글을 쓰고자 노력합니다. 저서로는 <3불 전략>,<촉>,<애플 콤플렉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