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4. 끝까지 버텨서 성공한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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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 낯설게 보기] #4. 끝까지 버텨서 성공한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

작성일2015-03-12

1886년 프랑스의 인기작가인 에밀 졸라는 <작품>이란 소설을 출간했습니다. 주인공은 클로드 랑티에라는 청년 화가인데, 세상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해주지 않는 데 비통해하며 목을 매 자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설 초판본을 절친한 친구인 세잔에게 보냈습니다.

세잔은 책을 펼쳐보고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세잔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정부와 아들이 있었고, 졸라에게 한 자신의 말이 그대로 책에 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묘사한 실패한 화가의 모델이 바로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세잔과 졸라

 ㅣ화가 폴 세잔의 자화상과 에밀 졸라의 소설 <작품> 책표지, 소설가 에밀 졸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던 세잔과 졸라

세잔과 졸라의 우정은 매우 깊었습니다. 1839년생인 세잔과 한 살 어린 졸라는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부르봉 중학교를 함께 다녔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졸라는 집이 매우 가난했습니다. 게다가 몸집이 작고 병약했으며 말더듬이여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때마다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인 세잔이 졸라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취미가 비슷했던 두 사람은 이야기가 잘 통했고, 쉽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어릴 때는 세잔이 문학에, 졸라는 그림에 심취해 있었지만 절친한 친구의 영향으로 인해 세잔이 그림에 눈을 떴고, 졸라는 책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둘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젊은 시절의 세잔과 에밀 졸라젊은 시절의 세잔과 에밀 졸라

 둘의 관계는 성인이 되자 180도 뒤바뀌었습니다. 졸라는 20대에 이미 인기작가가 되었고, 세잔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거죠. 더욱이 세잔을 은행가로 키우려던 아버지는 그림에 빠진 아들이 못마땅해 생활비를 끊었습니다. 이 때부터 졸라가 세잔의 생활비를 대주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세잔은 미술학교 입시에도 떨어질 만큼 기초적인 그림 실력이 부족했습니다. 그의 초창기 작품은 변두리 싸구려 술집에나 걸려있는 그림처럼 기본 구도나 인물의 균형도 안된 졸작이 대부분입니다. 그는 젊은 천재가 아니라 대기만성형의 늙은 대가였던 것입니다. 세잔은 그림을 그리다 답답해지면 유일한 친구인 졸라를 찾아가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렇다 보니 졸라는 <작품>이라는 소설을 구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졸라는 이 소설이 비록 세잔에게서 모티브를 얻었지만 예술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겠지요.

 세잔이 졸라와 결별할 수 있었던 이유

그러나 세잔은 달랐습니다. 50대 중반에 가서야 겨우 빛을 보았던 세잔은 화가의 길에 대해 매일 의심했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습니다. 소작농의 딸이었던 아내는 그의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친구 졸라를 찾았고, 그만은 자신을 인정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입니다. 분노에 찬 세잔은 즉시 졸라에게 짧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세잔의 편지

세잔이 졸라에게 보낸 편지

친애하는 에밀. 친절하게도 보내준 <작품>은 잘 읽었네. 고맙지만 옛 시절에 대한 좋은 기억으로 자네를 기억하겠네. 과거의 친구로부터.

이렇게 30년 지기의 우정이 끝났습니다. 20년 가까이 자신을 후원해주던 친구와 절교할 정도로 세잔의 분노가 그렇게 컸던 걸까요. 사실 세잔이 결별을 결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1886년은 세잔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해인데요. 그는 세잔뿐 아니라 며느리와 손자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환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지, 죽기 얼마 전에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세잔에게 40만 프랑의 유산을 남긴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돈으로 치면 100억 원에 가까울 정도로 거액이었습니다. 세잔은 이제 돈 걱정 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후원자도 필요하지 않게 되었지요. 막대한 유산이 없었다면 세잔이 졸라와 그렇게 쉽게 결별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예술가의 성공 요건

세잔은 그 후에도 10년을 더 그림에 몰두한 후에야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중들에게 인정받은 건 죽은 다음이었고요. 만약 졸라나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세잔은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세잔을 성공으로 이끈 건 ‘버티기’였습니다. 세잔은 성공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잔의 작품들세잔의 작품들, <커튼과 꽃무늬 물병이 있는 정물, 1899>과 <카드놀이하는 사람들, 1980~92>.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은 지난해까지 미술 경매 최고액(약 2760억 원)을 기록했다.

   예술가들이 성공하려면 네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첫째,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능력 역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쉽게 말해 잘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열정과 재능은 관련성이 높습니다. 잘하는 일을 하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해서 자꾸 하면 잘하게 됩니다. 셋째, 축적이 필요합니다. 열정과 능력이 있어도 끊임없는 연습과 노력에 의해 어느 수준 이상 작품성이 올라가야 합니다. 축적은 처음에는 수준이 늘지 않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급격히 증가하는 그래프를 그립니다. 그래서 경험곡선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축적의 과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모짜르트나 피카소 같은 젊은 천재들은 매우 짧고 늙은 대가인 세잔은 아주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안타까운 건 축적이 돼서 높은 수준에 도달해도 성공을 위해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넷째, 성공할 수 있는 상황이 갖춰져야 합니다. 시대적, 사회적 여건이 그 예술가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건 사람이 컨트롤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닙니다. 그래서 버티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기간까지 버틴 사람은 성공하고 중간에 포기한 사람은 실패하게 되는 거죠. 재미있게도 예술가가 성공하는 이 메커니즘은 창조와 혁신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성공하는 벤처의 특징

유명한 벤처 투자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들은 사업 아이디어에 돈을 댈 때 두 가지를 본다고 합니다. 첫째는 시장성, 둘째는 팀워크입니다. 사실 미래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성이란 벤처업계에서 유행하는 트렌드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중요하게 보는 게 팀워크인데, 여기서 팀워크가 바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언젠가는 소비자들에게 수용되기 마련입니다. 이때까지 버티면 성공하고, 중간에 포기하면 실패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벤처기업의 공통점을 보면 초기에 매우 보수적입니다. 가능하면 사람을 뽑거나 규모 확장을 안하고, 소비시장보다는 B2B 사업을 유지하는 등 최대한 적자가 나지 않도록 사업을 운영합니다.

벤처의 성공요인

일본 교토지방에는 대기업을 이기고 세계 1위가 된 벤처기업들이 모여 있습니다. 교세라, 닌텐도, 일본전산, 무라타제작소, 시마즈제작소, 호리바제작소, 니치콘, 옴론 등 이들은 교토기업이라고 불립니다. 이들의 공통점 역시 모두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 무차입경영을 하고,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현금흐름 회계를 기준으로 경영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손익계산서 상의 이익보다 현금이 들어와야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파나소닉 같은 대기업과 경쟁을 시작한 교토기업들은 처음부터 생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기술과 제품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장기간 버티는 게 비즈니스의 핵심이었습니다.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글에서 할 말은 다했지만 그래도 궁금한 게 남았습니다. 그 후 세잔과 졸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평생 만나지 않았습니다. 1895년 세잔의 첫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대중들은 냉담했지만 미술 전문가들은 그의 화풍에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세잔은 자신의 전시회에 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개인전이 끝난 후 미술상이 세잔에게 찾아와 전시회가 성공적이었다고 떠들어댔습니다. 세잔은 시끄럽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 질문만 했습니다.

“거기, 졸라도 왔나?”

졸라가 오지 않았다고 하자 세잔은 매우 실망했습니다.

에밀졸라에게 책 읽어주는 폴 세잔<에밀 졸라에게 책을 읽어주는 폴 알렉시스>, 1869~70

  1902년 졸라는 세잔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난로를 열고 자는 바람에 석탄에서 나온 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것입니다. 졸라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들은 세잔은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나오지 않은 채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졸라 덕분에 버티기가 가능했던 세잔, 그는 졸라에게 진심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병주 프로필

신문과 잡지에 경영 칼럼을 기고하는 칼럼니스트이자 경영 전문가입니다. 오랫동안 기업의 창조와 혁신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평소 인문학적인 글쓰기를 즐기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는 글을 쓰고자 노력합니다. 저서로는 <3불 전략>,<촉>,<애플 콤플렉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