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콜] 그 많던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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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콜] 그 많던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성일2012-03-05

오늘은 공연장에서 접할 수 있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Scene 1. 이 공연장에는, 남자는 없습니까?

2005년 쯤이었습니다. 대학로에 뮤지컬 <헤드윅>을 보러 간 적이 있습니다. <헤드윅>은 트랜스젠더 록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브로드웨이보다 국내에서 더 인기를 끌고 있는 록 뮤지컬이기도 합니다.
나름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공연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갔습니다.

하지만 객석에 입장한 순간, 잠시 얼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극장을 가득 메운 500여 명의 관객들 중 남성 관객은,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죠. 거짓말 아니냐고요? 사실입니다. 설마 설마 하며 정말 유심히 살펴보았으니까요.

마치 영화 혹성 탈출에서 지구에 불시착한 주인공의 기분이 이럴까요. 누가 뭐라 그런 것도 아닌 데 혼자 어쩔 줄 몰라 하며 공연 끝까지 주변의 눈치를 살폈던, 잊지 못할 밤이었습니다.

Scene 2. LG아트센터 주니어 보드, 남자도 지원할 수 있습니다.

LG아트센터는 대학생 자원 봉사자 ‘주니어보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연계 업무를 체험해 보고 싶은 대학생을 매년 5~7명 선발하여 공연 기획 및 홍보 마케팅 업무를 보조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매년 주니어보드를 뽑을 때마다 같은 문제에 봉착합니다. 바로 ‘뽑을 남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수한 스펙을 자랑하는 여학생들의 지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십 장씩 접수되는 반면, 남자 지원자의 수는 마감일까지 기다려도 손가락에 뽑을 정도입니다.

그나마 자기소개서를 읽다 보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를 외치게 만들며 혼돈의 카오스에 빠지게 하는 지원자가 태반입니다. 공연장에서 일하다보면 가끔 사다리도 타야 하고, 무거운 것도 날라야 합니다. 솔직히 남자가 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원자 자체가 적고, 그 열의도 여성이 월등하다 보니, 남성의 숫자는 언제나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네크로슈스 연출 파우스트 (2009)

네크로슈스 연출, <파우스트> (2009)

어쩌다가, 이런 현상이 생기게 된 걸까요?

공연장은 여초현상 甲.

공연장은 어느 곳보다 여초현상이 두드러지는 곳입니다. 일하는 사람도 여성이 많고, 관객들도 여성이 많습니다. 현재 LG아트센터의 정직원은 총 24명인데, 이중 대표님을 포함하여 13명이 여성입니다. 그나마 이 정도 성비는 남자가 8명이나 있는 무대팀 덕분입니다. 운영팀은 6명 중 2명만 남자, 공연기획팀은 8명 중 달랑 저 혼자만 남자입니다.

뮤지컬 (2008)

뮤지컬 nine (2008)

관객들을 볼까요? 가장 최근에 공연했던 ‘이자람의 판소리 브레히트 <억척가>’의 경우, 구매자 중 여성 회원의 비율이 77%, 남성 회원의 비율은 23%에 불과합니다. 상반기 화제의 공연이었던 the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여성의 비율이 무려 81%, 남성 구매자는 꼴랑 19%입니다.

흔히들 공연장 관객들은 대부분 남녀 커플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나 발렌타인 데이 같은 날이나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여성 커플이나 여성 혼자 오시는 관객들의 수가 더 많습니다. 가끔 가뭄에 콩 나듯 남자 혼자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정말 공연을 사랑하는 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남-남 듀오, 혹은 남-남-남 트리오는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은 정말 만나뵙기가 로또 4등 당첨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여성에게 공연은 목적이고, 남성에게 공연은 수단입니다.

작년에 참석한 한 세미나에서 인상적인 발표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공연 관객들의 성향에 대한 대규모 설문조사를 분석한 것입니다.남녀 성별로 공연을 선택하는 이유가 크게 달랐습니다.

여성의 경우 공연의 내용, 출연자, 제작진 등 공연 내적인 이유가 작품을 선택하는 요인입니다. 남성의 경우 공연장의 위치, 티켓의 가격 등 공연 외적인 이유가 상위에 대거 포진해 있었습니다.

‘공연관람 동기’에 대한 답변은 더욱 걸작이었습니다. 공연 관람 이유는 당연히 ‘그 공연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적잖은 남성관객들은 다음과 같은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아내, 여자친구 등) 동행자가 원하는 공연이라서’, ‘동행자의 생일,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이 발표의 결론은 다음 두 줄로 요약되었습니다.

여성에게 공연은 목적이지만, 남성에게 공연은 수단이다. 남성은 (일반적으로) 공연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 남성은 공연장에 오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왜 남성은 여성만큼 공연을 좋아하지 않는가? 이것은 공연계에 들어온 후부터 항상 품고 있었던 커다란 의문이기도 합니다. 아직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여성이 남성보다 공감(共感)능력이 발달했기 때문에.

저희 어머니는 매번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펑펑 쏟으십니다. 아버지는 그 때마다 한 마디 하시죠. “아니 그냥 드라마인데 대체 왜 울어?” 라고요.

남성들이 이해할 수 없는 여성들의 뛰어난 공감(共感) 능력은 공연장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여성은 무대 위의 이야기와 캐릭터에 쉽게 감정 이입을 합니다. 가끔 변변치 않은 유머에도 잘 웃어주고, 슬픈 장면에서는 어김없이 누군가 눈물을 흘립니다. 공연 후에는 박수와 환호도 아낌없이 보내줍니다.

반면 일부 남성 관객들은 의자에 앉는 자세부터 여성들과는 좀 다릅니다. 양 팔은 팔짱을, 몸의 무게 중심은 최대한 뒤로, 고개는 15도 가량 삐딱한 각도로 무대를 바라봅니다. 아무래도 이런 자세로는 공연을 즐기기가 어렵죠. 때론 객관적으로 보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왕 공연장에 왔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무대와 교감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2. 여성은 직관적으로, 남성은 논리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좋은 음악은 그냥 들어도 좋은 음악이고, 좋은 그림은 그냥 보아도 좋은 그림입니다.

공연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용수가 춤을 출 때, 그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의 의미를 분석하여 춤을 잘 춘다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 춤에서 아름다움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 직관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죠.

남성은 일반적으로 직관보다 논리를 신봉합니다. 그래서 무대에서 펼쳐지는 것들에 대해서도 논리적으로 분석하려는 경향이 있죠. “거기서 대체 왜 그런 거야?” “그 동작이 의미하는 게 뭐야?” 같은 것입니다. 그 호기심이 결코 틀렸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공연을 보다 즐기기 위해서는 좌뇌보다는 우뇌를, 논리보다는 직관을 쓰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2009)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2009)

3.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공연이 더 많기 때문에

공연계 종사자들은 누구나 여성 관객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같은 공연을 열 번 스무 번 관람하여 수지를 개선시켜주는 VIP 관객은 대부분 여성입니다. 때문에 공연기획사 입장에서는 ‘여성들이 좋아할 법한’ 공연을 선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자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공연, 근육질 몸매가 강조되는 공연, 게이나 동성애 요소가 부각되는 공연, 여성의 욕망과 몸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연이 있습니다. 이런 공연들이 유독 많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위와 같은 요소들 때문에 작품성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아무래도 남성 관객보다는 여성 관객들에게 훨씬 강한 마케팅 효과를 발휘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공연장에 오기를 주저하는 당신에게.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드물긴 하지만 공연을 정말 좋아하는 남성들이 제 주변에도, 여러분 주변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혼자 공연 보는 남자라 해도 이상한 변태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요즘 순위 경쟁이 한창인 프로야구는 매일 매일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줍니다. 야구팬 분들 혹시 그런 생각해보신 적 없습니까? ‘야구가 없다면, 우리는 대체 무슨 재미로 살 수 있을까?’ 하고요.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정도 바로 그렇습니다. 공연 없이, 공연을 모르고 산다는 건, 인생의 가장 큰 재미를 하나 잃고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영화나 책보다도 더 직접적이고 더 큰 진폭의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공연뿐이니까요.

공연장이 아직 낯선 남성 관객 분들은 공연장의 딱딱한 분위기가, 비싼 티켓 값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공연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공연장에서 일하는 저도 뭐 자주 그렇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속는 셈치고, 마음을 열고 가끔 공연장에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한두 번 오다보면 의자도 좀 편안하게 느껴지고, 낯익은 얼굴들도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무대 위의 이야기와 움직임, 소리에 집중하여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공연을 만나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감동이 찾아오는 순간이 발생합니다. 복제될 수 없는, 살아 숨쉬는 ‘공연의 감동’에 전율하는 순간입니다. 축구보다 야구보다, 공연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순간이지요?

안젤리크 키드조 (2011)

<안젤리크 키드조> (2011)

이제 공연에 대한 도전정신이 좀 생기셨나요? 그렇다면 이번 주말, 가까운 공연장 한 번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떨까요?

한동희 프로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이 전과 같지 않더라" 조금은 낯설지 모르는 공연 예술의 세계, 힘 닿는 데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