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44. ‘걸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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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44. ‘걸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작성일2015-04-10

승용차를 신발처럼

승용차가 신발 역할을 도맡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두 발을 감싸고 있는 진짜 신발은 이동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발 보호 도구에 그쳤습니다. 차라리 승용차를 움직이게 하는 역할이 더 컸습니다.
이때의 신발은 꼬박꼬박 차려 입는 옷과 더불어 매일 갖춰야만 하는 것일 뿐이었지요.
툭하면 차를 이용하던 시절, 자연 눈에 띄는 것도 머리에 떠올리는 것도
승용차의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차가 제공하는 속도감, 편의성, 그리고 안락함…
승용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승용차를 이용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 삶의 기대치가 차의 속성을 닮아갔습니다.

속도감

우선, 속도감에 익숙해져 매사에 급해졌습니다.
가뜩이나 ‘빨리빨리’가 대세인 양 하는 세태에 자연스럽게 올라탄 꼴이 되었습니다.
‘이거 아닌데’ 하는 되돌아봄조차 후다닥 날려버렸습니다.
속도감에 길들여진 생활은 내게 꼭 필요한 게 아니면 건성건성 보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달리는 차에서 차창 밖 풍경을 대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여건과, 그날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여타의 것은 아무런 느낌 없이 흘려버렸습니다.
속도는,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을 주지 않습니다.
속도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 챙길 것을 부추깁니다.

편의성은 승용차 생활의 마력(魔力)입니다.
이 맛에, 그 매력에 젖어들다 보니 저도 모르게 불편함을 견뎌내기 힘들어 하는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차 없이 지내던 시절의 기억은 저만치 사라져, 마치 지난 일이 아니었던 듯 현재 모습에 집착하게 된 것이지요.
편의성은 더불어 안락함이란 부가가치를 끌어냅니다.
이 두 가지 가치는 비단 차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의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편의성과 안락함은 다른 가치를 과감하게 내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품고 가고 싶은 목표로 떠오릅니다.
승용차만 놓고 봐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지금보다 더 편하고 안락한 차에 대한 갈망.
여기서 이른바 다운사이징은 곧 질적인 삶의 후퇴로 받아들여집니다.
이랬었지요. 지금 제 생활에서 차는 이제 차일 뿐입니다.
‘보석(寶石)’ 같은 존재감으로 삶의 나침반 그 이상의 무게감을 지녔던 한때를 뒤로 하고…

걷기의 즐거움

한번 돌아봅니다.
차(車)와 신발의 의미를, 그리고 그 속성을.
걷는다는 것은 제 품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엔 속도감도 없으며 편의성도, 안락함도 없습니다.
속도 낼 일 없으니 두루두루 살필 줄 알게 됩니다.
쌩쌩 달릴 때, 그냥 지나치던 것에서 느낌을 받습니다. 몸으로 생각으로.
편의성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때로는 힘들고 불편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제 품을 들여서 얻게 되는 자극은 이로운 작용을 합니다.
걷는다는 것은 단지 뚜벅뚜벅 옮기는 걸음걸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의 있는 그대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제 주변을 살피게 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깨닫게 합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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