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속 세상돋보기] #1. 바그다드의 추억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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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속 세상돋보기] #1. 바그다드의 추억

작성일2013-01-25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침공 석 달 뒤인 2003년 7월 7일 새벽.
요르단 암만을 출발해 동쪽으로 1,000km 떨어진 이라크 바그다드를 향해 사막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바그다드 공항은 공습으로 폐쇄된 터라 이동을 위해선 차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고,
팔레스타인 사람인 현지가이드는 짧은 영어로 취재팀에게 아침을 먹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용변을 보러 차를 세우면 ‘알리바바’라 불리는 도적떼가 나타나기 때문에
열 네 시간을 쉬지 않고 사막의 모래바람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라크 바그다드 BAGHDAD 89km http://pichaus.com/road-baghdad9gag-baghdad-@d0bcc296a3d6cc34e8b405e7151e374a/

바그다드 함락 뒤인 그 해 여름은 전쟁은 끝이 났지만, 사담 후세인 지지자들의 저항이 더 심해졌고, 적잖은 특파원들이 붙잡히거나 죽어갔습니다. 이라크전쟁으로 유명해진 한국 특파원들도 대부분 귀국한 상태였지만 ‘바그다드 함락 100일’방송기획이 필요하다는 게 당시 보도국의 판단이었습니다.

사막에서 먼저 만난 것은 알리바바가 아니라 미군이었습니다. 미군 헌병에게 같은 참전국인 한국의 여권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원칙대로 모래에 엎드리게 한 뒤 검문을 진행했습니다.
14시간 반 만에 도착한 바그다드의 한국영사관에서 컵라면과 고춧가루도 거의 없는 양배추 김치로 허기를 
달랜 뒤, 온도계를 빌려 거리로 나가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눈금이 섭씨 50도까지가 전부인 한국산 온도계 바늘은 이미 50을 훌쩍 넘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우리는 2분 이상 햇볕아래 서 있으면 현기증이 느껴지는 살인적인 찜통더위와 싸우며 취재를 이어갔습니다.
사막은 건조하기 마련이라는데 바그다드는 티그리스강이 흘러 습도마저 높았으니, 살집이 제법 있는 후배 촬영기자는 체류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탕~탕~!”

더위를 순식간에 잊어버릴 총소리가 취재 중이던 바그다드 거리에서 터져 나왔습니다. 잠시 후 몇몇 미군이 이라크인들을 향해 소총을 무더기로 발사했고 거리 스케치를 위해 찾은 상점거리에서는 서너 명의 이라크 젊은이들이 수건에 감싼 칼을 들고 우리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미군 헌병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급하게 차에 뛰어들어 현장에서 가까스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거리 한 켠에선 노점상들이 권총을 돗자리에 진열한 채, 총 한 자루를 불과 5달러 안팎에 흥정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무덥고 절망적인 거리, 취재팀은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그것은 LG전자 간판을 내 건 상점 앞에서 이라크인 점원들이 에어컨을 팔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쇼윈도 너머에는 한국인으로 보이는 동양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LG전자 간판 http://goo.gl/pOE6n

취재전선에 나섰던 종군기자들마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떠나버린 바그다드…
거리 곳곳에서 간간이 총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곳에서 에어컨과 컴퓨터를 팔고 있는 조국의 기업…

당시 한국의 언론사는 전쟁 현장을 취재해도, 생명수당은 따로 없었는데요. 기업들이라고 사정이 달랐을까요? 상점 안에 있던 그 한국인이 건강히 잘 지내길 기원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경험이었지만, 그 직후 기업에 대한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외국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물건을 팔아 외화를 벌어들이는 기업과 한국 정부의 인허가를 받아 우리 청소년과 주부, 노인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기업은 차이가 크구나…’

중동 지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드라마(좌:csnews@csnews.co.kr)

지난해 이라크에 한류 열풍이 불었습니다. 국내에서 64%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국민드라마 ‘허준’이 이라크에서 방송돼 시청률이 80%에 육박하며 한의학 열풍도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주인공인 배우 전광렬씨는 국빈대우를 받으며 이라크를 방문해 영부인과 기념사진을 찍고, 이라크 최고의 TV토크쇼에도 출연했다고 공개했습니다. 허준은 서자로 태어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실의에 빠져 젊은 시절 왈패로 살다가, 사랑의 힘으로 의생이 된 뒤 역경을 딛고 신분상승을 하며 왕의 건강을 책임지는 어의가 된다는 남성판 신데렐라 이야기입니다. 이란과 이라크 사람들은 숱한 고생을 겪지만 끝내 이겨내는 허준의 줄거리에 대해 “This is our story”라며 감정이입을 한다고 중동 전문가인 한 문화인류학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이라크는 최근 한국에서 방송중인 드라마 ‘마의’도 수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노예의 신분인 주인공 광현(조승우님)이 신분제의 억압을 뚫고, 말을 고치는 ‘마의’에서 사람을 고치는 ‘인의’가 되어 왕의 생명을 구하며 성공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이란에서 90%의 시청률을 기록한 ‘대장금’으로 대표되는 한류 드라마들이 중동국가들의 안방에서 불러일으킨 한류는 ‘메이드 인 코리아’로도 이어져 한국상품의 시장점유율 상승으로 연결되고 있다는 건 다 알고 계시죠?

바그다드 어느 골목

2003년 7월 바그다드, 그 무더위에 전기공급이 중단된 아파트에서 십층 넘게 걸어서 오르내리며 취재팀을 따라다녔던 큰 눈망울의 이라크 어린이들.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게 “열심히 공부해서 이라크를 강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던 그 아이들. 어느덧 성인이 됐을 그들이 한국산 에어컨으로 더위를 식히며 한국산 TV로 한류드라마를 시청하는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봅니다.LG

안형준 프로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 시시각각 변화하며 새롭게 부각되는 세계 속 숨은 이슈와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냉철한 시각으로 담아내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시각의 메시지를 전하고픈 세상 돋보기의 안형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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