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속 세상돋보기] #25. 돈, 목숨 그리고 품위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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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속 세상돋보기] #25. 돈, 목숨 그리고 품위

작성일2015-09-16 오전 11:24

“나한테 이러고 뒷감당할 수 있겠어요?”
1천만 관객을 돌파한 ‘베테랑’의 주인공 유아인이 형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정의의 형사 역할을 맡은 황정민 씨가 동료 경찰에게 던져, 온라인에 회자되는 대사입니다.

최상무(유해진)는 조태오(유아인) 본부장의 사촌형인데, 사촌동생을 보좌하며 마약 심부름까지 도맡습니다. 투신으로 위장하려던 살인사건의 윤곽이 드러나자, 조태오와 그의 아버지는 최상무에게 대신 죄를 뒤집어쓰라고 요구합니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가족들을 돌봐주고. 출소하면 사장 자리를 주겠다’는 약속도 합니다. 제안을 받아들인 최상무는 기꺼이 경찰에 거짓으로 자수한 뒤, 자신있게 한 마디 던집니다. “알량한 형사 신분으로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영화 ‘베테랑’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베테랑’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돈을 위해 온갖 수모와 모욕을 견뎌내는 최상무의 연기는 분노와 함께 연민도 느끼게 하는데요. 반면 거대한 조직과 홀로 맞서는 형사의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돈 앞에 완벽하게 의연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합니다.

지난 6월 캐나다 빅토리아주의 한 경찰서에 현금 2천 달러가 든 가방이 전달됐습니다. 돈가방을 주웠다고 신고한 사람은 뜻밖에도 60대 노숙자.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노숙자의 정직함에 감동해 주민 모금을 주도했습니다. 주민들은 온라인으로 모금한 5천 달러를 전달하려 했지만, 그 노숙자는 거절했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자선기관을 통해 불우한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습니다. 노숙자보다 더 불우한 이웃은 과연 누구일까요? 노숙자는 ‘내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라고 말했고, 주민들은 그의 일자리 찾기를 시작했습니다. 현실의 노숙자는 영화 속의 배우 같고, ‘베테랑’의 최상무는 현실 속 인물처럼 보입니다.

돈 안형준

노숙자가 외면한 5천 달러의 8천 배가 넘는 로또 당첨금 전액을 기부한 노신사도 있습니다. 2년 전 겨울 CNN이 보도했는데요. 노숙자와 같은 캐나다 서부의 캘거리였습니다. 주인공은 1년 전 전기회사 최고경영자에서 은퇴한 60대 남성입니다. 그는 복권 당첨금 4천만 달러(480억 원)를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캐나다 C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44년간 회사에 근무하며 운이 좋아 성공했고, 자식들도 잘 됐기 때문에 돈이 필요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33년간 같이 한 아내가 열 달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당첨금은 자신과 자식들이 정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미 그는 복권 당첨 전에도 아내가 암치료를 받았던 암센터를 위해 120만 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돈 보다 소중한 것을 택하며 품위를 유지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돈이 아니라 하나뿐인 목숨의 경우는 어떨까요? 중국 최초의 황제 진시황은 약 2천3백년 전, 불로초(不老草)를 찾아 평생 죽지 않으려고 시도했습니다. 5백 명의 젊은 남녀를 한반도의 남해도에 보내 불로초를 구했지만, 실패했습니다. 2천여 년 전, 불로초를 꿈꾸던 욕망은 최근에는 ‘냉동인간’으로 이어집니다.

얼음인간 안형준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했던 스물세 살의 여대생은 스스로 ‘냉동인간’이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냉동인간은 액체 질소 속에 육체를 냉동시켜 보존하다 의학기술이 극히 높은 수준으로 발달한 미래의 어느 날, 다시 일어나 생명을 이어간다는 이론입니다. 비용은 8만 달러, 우리 돈 약 9천6백만 원입니다. 이 여대생은 뇌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SNS와 인터넷을 통해 모금운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세계 최대 인체 냉동보존 서비스 조직인 미국의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에는 1백여 구의 시체가 미래에 부활을 꿈꾸며 잠들어 있습니다.

20대 초반에 시한부 인생 판정을 받은 젊은이의 냉동인간 선택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최근 유럽에서는 스위스로 여행을 가서 안락사를 택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건강한 70대 영국 여성이 단지 “늙는 게 싫다”며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택했습니다. 1주일 뒤에는 폐암 진단을 받은 68세 영국 남성이 또다시 같은 길을 따라 갔습니다. 스위스와 베네룩스 3국은 안락사를 통한 ‘조력자살’을 법으로 허용하고 있지만, 영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불법이기 때문입니다. 영국 가디언지는 지난 13년간 스위스의 한 병원에서만 안락사한 영국인이 약 3백 명에 이른다고 보도했습니다.

Men silhouette

몇 년 전 취재를 위해 의사자(義死者)의 유족을 집중적으로 만났습니다.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다 본인이 숨져간 의사자. 그 유족은 상실감이 컸지만, 그 고귀한 죽음 앞에서 품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2년 전 남태평양 원양어선 동승 취재 당시, 원양어선의 선장과 2주일 동안 매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만에 하나 태풍 같은 재난이나 뜻밖의 사고가 닥쳐 올 경우, ‘먼저 선원들을 구하고 자신은 배와 최후를 같이 할 것’이라는 신념은 확고했습니다. 적어도 그 선장에게는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영화 베테랑의 몇몇 장면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

서 형사의 아내(진경)가 최상무(유해진)에게서 받은 명품 가방 뇌물 제의를 거절한 뒤, 경찰서를 찾아 남편(황정민)에게 절규하듯 외친 대사입니다. 당당히 형사 일을 해 온 배우자에 대한 격려이자, 한 순간 돈의 유혹에 흔들린 자신에 대한 반성이 배어납니다. 1천만 관객을 돌파한 무거운 영화들이 인생과 품위에 대한 잊었던 질문을 하게 만드는 가을입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형준 프로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 시시각각 변화하며 새롭게 부각되는 세계 속 숨은 이슈와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냉철한 시각으로 담아내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시각의 메시지를 전하고픈 세상 돋보기의 안형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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