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6. 나만의 털어내기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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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6. 나만의 털어내기

작성일2013-04-23

한 중년의 남자입니다.
작달막한 키에 거무튀튀해 보이는 혈색, 중년이라는 나잇살을 접어두고 봐주더라도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배어든 듯한 얼굴. 얼굴 가득 주름살이 많다 못해 울퉁불퉁해 보이기까지 한 모습. 덧붙여 그의 머리엔 시커먼 모자, 흔히 말하는 군밤 장수 모자가 늘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장성한 두 자녀를 둔 가장이지만 지금 그의 삶은 녹록치 않습니다. 한 달 꼬박 일해서 손에 쥐는 건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90여 만 원. 그래도 이 사람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어딜 가도 환영 받지 못할 지금의 나이도 그렇거니와 그간의 배움도 이력도 짧기만 하고 단조롭기만 해, 할 수 있는 일에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눈 떠서 아침 8시까지 매일처럼 일 나갈 곳이 있다는 것, 그 하나만이라도 그에겐 보람이요 위안입니다.
무척이나 단순한 육체노동이 매일처럼 반복되는 일과, 주차장 유도요원이라 칭하는 일이 지금 그의 전부이자 소중한 일상입니다.

하루 평균 2000~3000여 대의 차량이 드나드는 그의 일터는 단순한 반면 많은 육체적 에너지를 소모시킵니다. 수시로 들고나는 차량을 제 자리에 사고 없이 주차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일부터 각양각색입니다. ‘주차 실력’부터 그야말로 천차만별, 여기에 운전자의 개인적 성향에다 그날의 기분까지 더해져 일희일비하게 되는 경우가 매일처럼 반복되지요.

방문 차량에 비해 주차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라 소위 ‘평행주차, 일렬주차’까지 매일처럼 진행됩니다.

차 한 대 드나들 때마다 평행주차 되어 있는 차를 앞으로 밀고 뒤로 당기고, 그가 일하는 곳에선 이를 ‘밀땅’이라 칭합니다. 이런 생활만 8년여, 이제 그는 ‘베테랑’입니다.

 

이 생활에 이골이 난지라 적당히 요령도 부립니다. 저마다 맡고 있는 구역이 있어 지치고 힘들 땐 다른 구역으로 차량을 ‘넘기는’ 거지요. 얼렁뚱땅 게으름이 매번 무탈하게 지나진 않습니다. 관리실의 CCTV 모니터에는 모든 주차 구역이 드러납니다. 조금이라도 허투루 일하는 모양새면 벼락 같은 무전이 날아듭니다. 개인별로 무전기를 다 휴대하기에 다른 근무자들도 같이 듣습니다.

이 사람은 말주변이 어눌합니다. 야단맞은 상황에 대한 억울함, 그럴 수밖에 없는 정당함을 설명하느라 하는 게 변명과 핑계처럼 들릴 정도로……. 진위 여부를 떠나 ‘지적’ 받는 게 유독 이 사람에게만 쏠리는 걸로 보아 둘 중에 하나겠네요.
실제로 게으름을 자주 피우거나, 아님 위로부터 ‘찍혔거나’. 그래도 그는 이 일터를 벗어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6개월마다 갱신되는 계약연장에 대해 노심초사해 합니다. 얼굴에 깊게 패인 많은 주름이 짧지 않은 이 바닥 생활의 흔적처럼 비치기도 합니다.

 

2주일마다 한 번씩 맞이하는 휴일, 그의 낙은 전철 타고 온천 가는 것입니다. 서울서 천안 가는 전철 노선에있는 온양온천이 그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힐링캠프입니다.

‘그 흔한’ 자가용이 없기도 하지만 매일처럼 전쟁하듯 마주치는 차량들이 지겹기도 하고, 무엇보다 편도 3000원 미만, 왕복 6000원 정도면 해결되는 교통편. 미식가들이 맛집을 골라 순례하듯 온천 또한 물 좋고 시설 깔끔한 곳이 대접 받은 지 꽤 오래. 그런 점에서 온양온천은 옛 명성 같지 않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은 적어도 그에겐 하등 중요치 않습니다.

 

5000원 동네 목욕탕 비용으로 온천욕 하며 나들이할 수 있는 곳, 그는 그래서 이 행사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국밥 한 그릇 요기 삼아 먹고 오는 즐거움까지 다 해도 2만 원에서 해결되는 그만의 ‘주말 메뉴’는 다시 다가오는 새로운 한 주의 버팀목입니다.

 

 

이번 주도 다다음 주도 어김없이 그는 천안행 전철에 몸을 실을 겁니다. 그 자신만의 ‘털어버리기’를 위해…….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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