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56. 시간여행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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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56. 시간여행

작성일2015-10-19 오전 9:30

낡은 단층 콘크리트 가옥. 그 한켠에 자리 잡은 식당. 차라리 허름한 밥집이라 하는 게 더 적합한 표현이지 싶은 정도로 작고 초라한 곳. 메뉴는 된장 비빔밥, 부추 부침개, 그리고 이를 안주 삼아 술 한잔 걸치려는 손님을 위해 파는 소주, 막걸리. 이게 차림표의 전부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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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끼 때울 요량으로 식당을 찾다 우연히 들르게 된 식당의 면면입니다. ‘우연히’라기보다는 ‘할 수 없어’ 가게 된 곳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습니다. 한 집 건너 식당이요, 카페인 게 다반사인데 하필 그날 제가 들린 곳은 이러한 ‘소비행태의 흐름’이 거의 무시된 듯한 동네였습니다. 겉모습을 보고 몇 번 망설이다 삐걱거리는 여닫이 출입문을 젖히고 들어서니 손님이라곤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차!’ 싶은 후회감과 ‘역시나!’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지만 뒤돌아 나가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없기도 하거니와 사람 드나드는 게 확연히 드러나는 자그마한 식당, 그리고 이곳 주인으로 보이는 노(老)부부, 이 두 상황이 제 몸을 안으로 떠밀었습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주문한 된장 비빔밥. 아! 그런데 이게 ‘환상적’이었습니다. 제 자식은 이 경우, “대박!” 그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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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 또는 식도락가가 아니어서 음식 관련 용어로 읊어내지는 못합니다. 그냥, 여느 집에서 좀체 맛보기 힘든 식사를 했습니다. 나물 몇 가지에 바글바글 끓인 진한 된장찌개, 그리고 비빔장으로 나온 고추장이 전부였지만 ‘그냥’ 맛있었습니다. 노부부가 매일 집밥으로 차려 먹는 식단, 그걸로 식당을 하기로 했고 그러다보니 구색 없는 밥집이면 족한 것이지요.

중요한 건 음식 맛. 나이 지긋한 어르신 두 분의 솜씨가 남다른가? 핵심은 다른 데 있더군요.
어차피 두 분 삼시 세끼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니 ‘내 밥상 차리는 데서 품을 좀 더하자’가 그 하나 – 너나 가리지 않는 정성이 배어들겠지요.생활비에 조금 정도만 보탬이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마음으로 ‘욕심 부리지 않고 소량의 식사만 준비’하는 게 그 둘 – 쌓아두지 않는 만큼 신선하겠지요. 애당초 당신들의 끼니용으로 아는 시골에서 직접 가져다 먹던 식재료이니 여느 것처럼 ‘공장 스타일’ 농산물이 아닌 게 그 셋 – 예전 우리가 먹던 그 맛이 살아있겠지요.

말 그대로, 아는 사람만 오는 단출한 가게지만 당신들의 밥상을 ‘욕심 부리지 않고’ 나누는 노부부에게선 편안한 미소가 생활인 양 배어났습니다. ‘맛집’을 공유하고자 일러드린 건 아닙니다. 맛으로 치자면 이보다 훨씬 뛰어난 곳이 어디 한두 군데겠습니까. ‘세태와 동떨어진 영업 장소’에서 되레 삶의 푸근함을, 맛의 건강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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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치칠 때, 혹은 분위기 전환이 필요할 때 우리는 흔히 여행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길을 나섭니다. 목적이나 동기에 따라 여행 컨셉트가 정해지겠지요. 한번쯤은 ‘시간여행’을 고려해보세요. 편하고 익숙하고 멋있고 거기에 재미있기까지 한 나들이도 물론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시침을 한참 거꾸로 돌린 듯한 일상과 잠시나마 마주해보는 일도 의미 있다고 봅니다.그 속에도 맛집은 있기 마련이고, 행여 스스로 찾아내기라도 한다면 그 일만큼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세상’과 마주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무엇이 되었건, ‘지나간 시간’과의 만남은 필요합니다.
그 속에서 지금의 나를 돌아보게 되니까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니까요.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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