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66. 세 줄짜리 낙서의 ‘던짐’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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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66. 세 줄짜리 낙서의 ‘던짐’

작성일2016-04-05 오후 3:56


요즘처럼 화장실이 ‘문화’로 격상되기 전의 일입니다. 그야말로 ‘코 막고 들어가서 코 비틀어 쥐고’ 나오던 때가 있었지요. 개인 집이야 사정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공중화장실은 대체로 뜨악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불결하고 지저분한 공간에 ‘편승해’ 온갖 낙서 또한 그 한 자리를 차지했었지요. 어쩌면 낙서 축에도 들지 못할 가지가지의 말들, 그리고 요상한 ‘그림들’… 한마디로, 한때 우리네 공중화장실은 생리적 배설뿐만 아니라 ‘욕구 배설구’이기도 했습니다. 세 줄짜리 낙서도 이 ‘B급 문화’ 시절의 한 곳에서였습니다.

예쁜 꽃은 꺾지 말고
꺾은 꽃은 버리지 말고
버린 꽃은 줍지 마라.

낙서 치곤 ‘메시지’가 있어 머리에 들어왔습니다. 그럴 듯하다 여겨, 기회 닿는 대로 나름 열심히 ‘전파’하던 기억이 새롭네요. 당시엔 이랬습니다. 남자 입장에서 여자를 대하는 처신을 일러주는 것. 남녀간의 교제를 이런 짧은 말로 정리한 것도 그렇거니와, ‘단계별 처신’이라는 수사를 발휘한 재주가 놀라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이것 말고도 웬만큼 ‘격이 있는’ 낙서들이 좀 있었다 싶네요. 이들을 뭉뚱그려 ‘화장실 철학’이니 어쩌니 했었나 봅니다. 어쩌면 자기 집보다 더 깔끔하다 할 만큼 격상된 요즘 공중화장실에 비춰보면 이 시절 얘기는 우화가 됩니다.

‘태생이 B급 화장실’인지라 제목도 없고 지은이도 알 수 없는 낙서에 불과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 의미가 다른 색깔로 다가옵니다. ‘꽃’이 내포하는 의미가 단지 ‘이성 교제의 상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 무엇’으로 읽힙니다. ‘그 무엇’은 이성으로서 남녀뿐만 아니라 친구, 은인, 선후배 같은 사람은 물론 사물, 나아가 가치관 같은 유/무형의 것까지 아우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다시 본 세 줄 낙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지라도 ‘함부로’ 얻거나 가지려 덤벼들지 말고, 생각이나 판단이 바뀌었다 해서 지니고 있는 것을 ‘섣부르게’ 폐기하는 가벼움 또는 새 것에 대한 ‘어설픈’ 호기심을 경계할 일이며, 이런 ‘신중함’ 끝에 내 손을 벗어난 것엔 미련을 두지 말라고.

우리는 성공을 위한 도전에 찬사를 보냅니다. 도전은 또다른 도전을 부추깁니다. 성공이란 열매는 이런 도전의 과정을 통해 이뤄지는 결실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궁극의 성공’은 없습니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마냥 성공이란 위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세상일에 따라 늘 새롭게 정의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해도 기꺼이 이 흐름에 내 모든 것을 던지겠노라 한다면, 달리 할 말 없습니다.

혹 이런 흐름에 일말의 현기증이나 피로감을 느낀다면 ‘할 말’ 덧붙입니다. 비록 작아보일지라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 무엇의 지금이 다음 단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섣불리, 함부로 그 다음을 예단하기보다 지금의 것을 인정하고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짤막한 세 줄짜리 낙서는 이렇게 웅변합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