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70. 관심이 ‘의미’를 만든다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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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70. 관심이 ‘의미’를 만든다

작성일2016-05-31 오후 2:20


이른 아침, 그날도 늘 다니던 길을 따라 습관처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시간 뒤쯤이면 오가는 사람들로 붐빌 길이지만 이 시각엔 한가합니다. 차량 출입이 안 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 흔한 자전거조차 잘 다니지 않아 더욱 한갓진 길이 됩니다. 때 되면 오로지 오가는 보행자들로만 북적이는 곳. 상가도 없고 주택도 없습니다. 길 주변엔 오래된 나무들과 잘 가꿔진 화초들만 도열하듯 이어집니다.

길이 차분하니 눈이 편하고, 눈이 편하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하루 중, 일상의 군더더기 같은 상념에 휘둘리지 않는 유일한 시간도 이때 맞이합니다. 비록 이른 아침, 그 시각 때에 불과한 ‘여유’지만, 매일처럼 짧게나마 누리는 나만의 ‘호사’인 양합니다.


이른 아침, 그날도 마찬가지였지요. 한갓진 상태는… 가려는 길 저만치에 한 여자가 가만히 서 있는 것 말고는 말이죠. 주변에 그녀 말고는 인적이 없었기에 차츰차츰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치기엔 괜스레 궁금증을 일으키는 무엇이 있었습니다. 멀찌감치 눈에 띄었을 때부터 가까이 갈 때까지 그녀는 한 모습, 같은 자세였습니다. 꼼짝 않고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입을 반쯤 벌린 상태도 변함없이.

매일 지나다녀 주변 풍광을 외우다시피한 터라, 뭐 새로울 게 없을 텐데 하면서도 그녀가 응시하는 쪽을 살폈습니다. 내친 김에 말도 건넸습니다. “뭐, 있나보죠?” 그녀는 그 자세 그대로 나지막하게 읊조렸습니다. “저~어~기.”

그녀가 눈길조차 돌리지 않고 가리킨 ‘저기’엔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더 자랄지 알 수 없는 소나무들, 그 사이로 여백처럼 비어 있는 자리에 화사하게 피어난 철쭉들, 그리고 잘 다듬어놓은 키 작은 소철나무… 굳이 있다면, 그 빈틈에 자리 차지하고 있는 길고양이 한 마리. 이른 아침부터 일광욕이라도 하는 양 꽤나 편안한 모양새였지요.


풍광은 뻔한 거고, 해서 이어붙인 말이 “아, 고양이를 좋아하시나봐요?” “아니!” 여전히 눈길은 그대로 둔 채 그녀는 제 짐작의 오류를 일러주었습니다. “그냥 보기 좋아서. 철쭉이랑 소철이랑, 그 속에 같이 어울린 고양이까지…” “아! 네…” 알 듯 모를 듯, 더 이상 아침부터 ‘헛갈리기’ 싫어서 가던 길로 발걸음을 뗐습니다. 그러는데, 그녀의 말이 내 뒷발치에 걸렸습니다. “관심을 가지면,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별 게 됩니다.”

아무런 ‘관계’도 아닌 두 사람이 어느 한 날, 아침 시각에 짤막하게 나눈 ‘관심’. 그 덕에 초로의 그녀에게 인상 깊은 말을 ‘얻었습니다’. ‘관심을 갖게 되면,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별 게 된다.’ 길 가며, 김춘수 시인의 <꽃>이 자꾸 되새겨졌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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