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14. ‘추억’이라 일컫고 ‘현재’라고 푼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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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14. ‘추억’이라 일컫고 ‘현재’라고 푼다

작성일2013-12-05

 “지난 일은 다 추억 속에 묻어 둡시다.”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지난 일, 즉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에 더 집중하자는 취지입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란 속담처럼 이미 지나버린 것에 대한
 후회나 미련은 부질없는 것이라는 뜻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추억은 지난 일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기억의 지우개’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추억이란 개념에는 이것 말고도 또 다른 의미 있는 역할이 담겨 있습니다.

기억의 지우개’이기도 하지만 때론 ‘기억의 창고’이기도 한  것이지요.

어슴푸레할지언정 지난 일의 잔상이 보존되기에 그것이 세월 흐른 어느 때에 필요한 그 무엇이 되기도 합니다. 과거의 일을 현재로 이어주는 징검다리 같은 것이지요.

누구 할 것 없이 저마다 추억은 있게 마련입니다. 지우개로써의  기능이 더 많건 창고로써의 역할이 더 강하건…

 

불쑥 돌아가신 부친의 경우가 생각납니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지내시던 어느 날, 제게 당신의 수첩 하나를 펼쳐 보이셨습니다. 

손바닥 반 크기의 자그마한 수첩에는 여러 가지 메모가 있었지요. 그 중 한 곳을 가리키며 당부하셨습니다.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부친 지인 분들의 주소, 전화번호를 꼼꼼하게 적어놓은 페이지였습니다.

그 가운데 몇 분들은 당신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저와의 연관성을 일러주시기까지 했습니다.

나 죽고 없더라도 당신께서 일러준 몇몇 어른께는 가끔이나마 안부 인사할 것, 그분들 경조사엔 부친 대신 인사할 것 등이 요지였습니다.

‘불효스럽게도’ 저는 부친의 당부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제 먹고 살기 바빠서라는 이기적인 판단은 변명일 뿐입니다.

선친 지인 분들의 애경사는 그 분들의 연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요.그러자면 평소 저란 놈이 안부인사라도 건네며 지내야 무엇이건 이어지겠지요.

전화 한 통화면 될 안부 인사조차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굳이 감추지는 않으렵니다.

선친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도리라 머릿속으로는 알면서도 행동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추억’이 없었습니다.
추억이라는 제 ‘기억의 창고’ 속에 아버님 친구 분들의 잔상이 남아 있지 않은 거지요.
그런 어색함은 망설임으로, 망설임은 결국 연락 안 함으로 이어집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추억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그나마 이런 추억조차도 ‘기억의 지우개’가 되기도 하고 ‘기억의 창고’가 되기도 합니다.
추억이란 개념은 ‘지난 일’에 관한 것이지만 추억 만들기는 ‘지금’ 것입니다.
‘기억의 창고’로써의 추억 만들기는 내 삶의 힐링이자 자양분입니다.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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