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16. 잠깐만이라도 세상과의 소통에서 벗어나 보세요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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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16. 잠깐만이라도 세상과의 소통에서 벗어나 보세요

작성일2013-12-26

어느 토요일 아침.

집 앞에 던져져 있는 신문을 집어다 습관처럼 펼쳤습니다.

종이 신문을 잘 보지 않는 요즘 세대에겐 전혀 관심 밖의 사항이겠지만, 그날 신문의 1면 머리기사가 무엇인가를 살피는 일은 개인적으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상 중의 하나입니다. 소위 오프라인 뉴스 매체에 익숙한 세대이다 보니 아침 신문의 머리기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막중한지를 잘 알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굳이 온라인 매체의 그것에 비유한다면 ‘실시간 검색어 1위’  같은 반열이랄까요. 물론 아침 신문의 1면 머리기사는 해당  기사의 비중, 파장이나 영향력 등과 더불어 신문사 편집국의 정체성, 주관 같은 의도가 반영된 결과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 포털 뉴스 검색창의 기사 배열과는 태생이 다릅니다. 또한 온라인의 검색어 순위는 순전히 사용자의 관심도  집계에 의한 결과물이지만 오프라인 매체의 기사 편집은 신문사의 판단에 의한 것이란 점에서 이 또한 완전히 다른 성향임이 분명합니다.

그날 토요일 신문의 머리기사는 ‘디지털 디톡스(Detox)’라는 다소 생경한 소식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디톡스란 단어는 ‘독을 뺀다’는 뜻이라는 설명과 함께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최근 치러진 한 행사를 집중 취재한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행사 내용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이른 아침까지 일체의 디지털기기와 단절된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입니다. 행사명과 똑같은 이름인 디지털 디톡스라는 비영리 법인이 주최한 행사로, 참가자들은 주최 측이 마련한 일정 실내∙외 장소에서 말 그대로 디지털이란 것은 하나도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최 측은 행사 취지를 살리기 위해 참가자들의 이름이나 직업 등 신분을 나타내는 일체의 ‘표시’조차도 금했습니다.
‘또 다른’ 형태의 비즈니스 연계 장소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되는 것, 익숙한 것보다는 안 되는 것, 낯선 것뿐인 이 행사를 준비하며 주최 측은 행사장의 규모를 감안해 500명 정도의 인원으로 한정했지만 1500명을 헤아리는 신청자가 몰려 선착순 입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기사는 전합니다.

실내 행사장엔 텐트가 쳐 있어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디지털’이 아닌 오리지널 아날로그인 ‘입’으로 대화를 나누고, 한 켠에 마련된 구시대의 유물 같은 타자기는 모바일 자판에 중독된 사람들의 손놀림 갈증을 해소하는 도구였습니다. 매듭 매기, 보드 게임, 미끄럼틀 같은 예전 방식의 놀이 기구도 ‘디지털 프리’의 한 도구로 역할을 부여 받았습니다. 실외 공간에 피어 오른 모닥불은 아날로그의 아련한 추억을 재생했습니다.

하룻밤에 불과한 비교적 짧은 행사, 이 시간 속에서 참가자들은 처음엔 익숙지 않은 환경에 불편해 하다가 디지털 없는 환경이 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잊혀지고 묻혀져 있던’ 생리를 새삼 발견합니다.

이번 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생계수단이요 생활 그 자체인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디톡스’ 행사가 갖는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합니다.

토요일 아침, 이 기사를 보며 저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익숙하게 마주하는 우리 일상이 떠올랐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고개 각도가 하나같이 일정하며 그 시선 또한 한결같은 ‘몰대중성’. 그래도 예전엔 뜨문뜨문 신문이나 책 따위가 손에 들려 있기도 했었는데…….

하긴 친구끼리 마주 앉아서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시선을 맞추는 게 아니라 눈과 손은 스마트폰과 친구할 뿐, 앞에 있는 사람이란 혼자 노는데 그림이 쓸쓸해 보여 갖춰 놓은 장식품인 양한 게 우리 자화상입니다. 우리 사회가 디지털 집착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이번 기사를 보니 그도 아닌 모양입니다.

세상의 패러다임과 도도한 흐름을 무시할 순 없겠지요. 혼자 독야청청 살기로 작정한 게 아니라면 싫던 좋던 그 세상 속에 있어야겠지요. 문제는, 지금의 생활양상이 개인이나 사회의 모든 것들을 다 아우르고 보듬을 정도로 ‘절대가치의 양질(良質)’은 결코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몇몇은 일과 이후엔 휴대폰을 아예 꺼버립니다. 종종 오해를 사기도 했나 봅니다만 그리고 좀 ‘손해’를 보기도 했나 봅니다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시간이 좀 지나자 그만의 아날로그적 회귀인 이 ‘만행’을 이해하게 되었다 들었습니다. off

때로는 ‘침묵(沈黙)’이 ‘다변(多辯)’이나 ‘즉답(卽答)’보다 사회성 높이는 데 더 의미 있는 자양분이 됩니다. 내면의 깊이를 더하는 것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약재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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