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낯선 서울] #1. 어두운 골목이 반짝이는 곳으로 변하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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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낯선 서울] #1. 어두운 골목이 반짝이는 곳으로 변하다

작성일2014-04-04

몇 년 전이었습니다. 평일 낮에 집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전철역에서 올라오자 ‘여기가 어디지?’ 하는 생각이 짧게  머리를 스쳐 갔습니다. 아침엔 출근하느라 정신없고, 퇴근할 때는 어두운 풍경만 보다가 오후의 밝은 이곳이 생경하게  느껴졌던 겁니다.

염리동 골목길 벽화 사진

순간 내가 사는 동네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철역에서 내가 사는 집까지 가는 공원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공원에 있는 의자의 색은 무슨 색인지, 어떤 나무들이 있는지.. 내가 사는 동네를 너무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거닐던 이곳도 그러한데 이 넓은 서울에 우리가 가보지도 못한 낯선 곳이 얼마나 많을까요?  내가 사는 그곳을 곱게 가꾸고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관심이 내 동네, 서울이란 삶 터,  우리 국토를 사랑하게 하고 결국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게 할 겁니다.

낯선 서울. 지금부터 시작해 봅니다.

염리동(鹽里洞)

서울특별시 마포에 위치한 염리동(鹽里洞).

옛날 마포나루를 거점으로 소금창고들이 많고 소금장수들이 많이 살아서 염리(鹽里)란 이름이 그대로 염리동으로 되었답니다. 소금 덕택으로 넉넉한 동네였던 이곳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재개발이 늦춰지고 거리는 갈수록 낡아져 갔습니다.

서울특별시 마포에 위치한 염리동 - 소금길

다닥다닥 계획 없이 지워진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은 사람이 다니기 싫은 길이 되어버리고 귀갓길이 무서운 여성을 위해 경찰이 집까지 바래다 주는 귀가 서비스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어두운 골목길을 바꾸고자 2012년  10월 이곳에 셉테드를 접목해 ‘소금길’을 꾸몄습니다.

셉테드
CPTED – 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범죄예방디자인
범죄취약지역에 디자인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해 나아가고 사후조치 위주이던 범죄대책에서 벗어나 사전예방을 위한 범죄 예방 디자인을‘CPTED 프로젝트’ 라고 합니다.

  소금길

그래서 간 곳 ‘소금길’
이곳에 처음 들어서면 한눈에도 좁고 붉은색 벽돌과 회색 시멘트로 지어진 낡은 건물들로 밝은 분위기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소금길 노란색 작은 푯말

그러나 소금길이라는 노란색 작은 푯말이 나오고 노란 치즈 같은 네모 모양의 바닥 점선을 따라 소금 길을 걸으며  ‘이곳에서 뭔가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구나.’ 를 느꼈습니다. 담벼락 위에 공포감을 주는 유리조각이나 쇠꼬챙이 대신  귀엽고 위트있는 캐릭터들이 반겨주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담벼락 위 귀엽고 위트있는 캐릭터들

이곳은..
 아름다운 원색을 담은 대문과 담, 1~69번의 번호를 붙인 노란색의 멋진 전봇대와 이정표, 마을 캐릭터 네모돌이가 있는 멋진 길입니다.

아름다운 원색을 담은 대문과 담, 1~69번의 번호를 붙인 노란색의 멋진 전봇대와 이정표, 마을 캐릭터 네모돌이

이곳은.. 
담이나 계단에 멋진 문양이 그려진 유머러스한 캐릭터 벽화가 있는 세련된 길입니다.

담이나 계단에 멋진 문양이 그려진 유머러스한 캐릭터 벽화가 있는 세련된 길

 이곳은..
 그동안 인적이 드물어 주민들이 불안감을 느꼈던 지점을 연결하여 1.7㎞의 산책코스로 꾸민 상쾌한 길이며 계단과  가파른 길이 많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 운동 코스가 되도록 운동기구를 배치한 건강한 길입니다.

1.7㎞의 산책코스로 꾸민 상쾌한 길, 계단과 가파른 길이 많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 운동 코스가 되도록 운동기구를 배치한 건강한 길

이곳은..
혹시나 모를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곳곳에 SOS안전벨을 설치해 어느 곳 보다 안전한 길입니다. 주민참여로 ‘소금 지킴이집’을 선정하여 대문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벨을 달아서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더불어 사는 따뜻한 길입니다.

혹시나 모를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곳곳에 SOS안전벨을 설치해 어느 곳 보다 안전한 길

수처작주(隨處作主)

염리동에서 범죄율이 줄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참 흐뭇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사는 동네가 예쁘고 밝아서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줄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곳이었으면 싶을 겁니다. 대 저택이 아니어도, 세련된 집이 아니어도, 고급 아파트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동네 사람들끼리 훈훈한 정을 나누는 그런 곳에서 더불어 산다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염리동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마을을 꾸미기 위해 그린 마을지도

수처작주(隨處作主)라는 말을 책에서 봤습니다. 어느 곳에 머물든 그곳을 더욱더 아름답게 가꾸라는 의미랍니다. 모든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라는 말도 되겠지요. 수처작주를 하는 이 곳 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염리동 어린이의 소금길 그림

숭문고등학교 정문에서 소금나루라는 간판이 보이는 지역 커뮤니티 공간의 옆 골목부터 소금길은 시작됩니다. 한번 거닐어 보세요. 동네 한 바퀴 느릿하게 돌고 나면 많은 생각을 하실 겁니다.

서동윤 프로필

1991년부터 광고 생활을 시작한 연차 많은 광고쟁이입니다. 현재 TV 광고 제작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희로애락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는 노련하지 못한 40대이지만 순수함과 작은 사랑의 소중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40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