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80. 낭만에 대하여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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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80. 낭만에 대하여

작성일2016-12-01 오후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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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이 강을 건너려 나룻배를 탔다.
보니, 노 젓는 이가 처녀 뱃사공이다. 장난끼가 돈 김삿갓이 수작 삼아 말 던진다.

“여보, 마누라! 노 잘 저으시오.” 처녀 뱃사공, 어이없지만 묻는다.
“어째서 내가 댁 마누라라 말하시오?” 옳거니 하며 김삿갓이 응수한다.
“내가 당신 배에 올라탔으니, 내 마누라지.”

강 건너, 김삿갓이 배에서 내린다.
“내 아들아, 잘 가거라.” 처녀 뱃사공이 그랬다. 
“어찌 내가 그대 아들인가?” 김삿갓이 놀라 묻는다.
“내 뱃속에서 나갔으니 내 아들이지.” 처녀 뱃사공이 한칼에 내지른다.
이 말 들은 김삿갓이 껄껄 웃으며 화답하길, “맞는 말일세, 그려! 어머님,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우리 옛 어른들의 해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냐 가공이냐, 여부를 떠나서 이 바탕에는 ‘낭만’이 깔려 있습니다. 풍류와 해학이 통하고 이를 즐긴다는 것은 낭만을 ‘안다’는 것입니다. 풍자와는 바탕 색깔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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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라디오 스타는 배우 박중훈의 OST ‘비와 당신’이라는 노래로도 유명한 영화입니다. 한물간 왕년의 락스타 최곤이 강원도 영월까지 ‘밀려나고’, 거기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이지요. 방송 송출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일개 중계소에서 주인공은 화려한 공연 무대의 마이크가 아닌, 초라한 방송실 마이크 앞에 철버덕 앉습니다. 가수가 아닌 DJ로.

쇠락한 도시, 영월. 어제오늘이 별반 다를 게 없는 무료한 일상이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그곳. 여기서 DJ를 한다는 것은 시골 이장이 동네 알림 방송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게 없었습니다. 주인공은 될 대로 되라 하는 심정에서 ‘최곤 스타일’ 진행을 합니다. 판박이 멘트, 다 안 들어도 다음 말이 뭔지 예측되는 뻔한 ‘진행의 공식’을 완전 무시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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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사람은 다 아는 줄거리라 스토리 언급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최곤 식’ 진행이 어떻게 무료함이 일상인 영월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을까요? 영화에선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낭만’입니다. 두꺼운 먼지마냥 켜켜이 쌓여 가려져 있던 감성, 낭만을 끄집어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영화 속 설정이지만 ‘최곤 식’ 진행은 대도시 같은 데선 언감생심입니다. 모든 것이 비즈니스로 귀결되고, 인풋(in – put) 대비 아웃풋(out – put)으로 가름하는 게 일상인 곳에서는 가당치 않은 일이지요. 이런 데서 낭만은 ‘감정의 사치’에 그칠 뿐입니다. 역설적으로 영월은 쇠락한 지역이었기에 저 깊숙이 감춰져 있어 잊고 지내던 낭만이라는 기저가 작동 가능했습니다.

현실에서는 바쁘게 지낼 수밖에 없고, 그나마 약간의 여유마저도 ‘일상의 관계’에 따라 여의치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낭만은 어느새 저만치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아예 잊고 지냅니다. 그러다 본래 없었던 것인 양 잊혀지기까지 합니다. 낭만은 ‘사치’가 아닙니다. 바쁠수록 되살려야 합니다.

가수 최백호는 ‘낭만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했지요.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낭만에 대하여, 나 자신은 둘 가운데 어디쯤인가.
새삼, 이 노래 다시 들어봐야겠습니다.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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