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속 세상돋보기] #11. 그녀가 남긴 것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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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속 세상돋보기] #11. 그녀가 남긴 것들

작성일2014-07-11

지난해 마지막 날, KBS 연기대상 수상식에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12~14%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MBC 월화드라마에 밀려 2위에 머물렀던 드라마의 주인공이 연기대상을 받은 것입니다. “드라마를 통해서지만, 저와 주변을 돌아볼 기회가 있어 행운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주변을 환기할 수 있는 드라마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대상을 수상한 김혜수 씨는 수상소감에서 드라마 <직장의 신>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비정규직 800만 명 시대,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택한, 자격증 124개를 가진 능력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입니다. 늘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의 주인공이 연기대상을 수상해온 관행이 신선하게(?) 깨진 것입니다.

‘직장의 신’은 여성 비정규직에 대한 얘기가 많았습니다.

“어떻게 임신 사실을 회사에 숨겨?”
상사가 다그치자, 여직원은 울먹이며 답합니다.

“나라고 임신을 숨기고 싶었는지 알아요? 다음 달이 재계약 평가 날인데, 알려지면 안 될 거 뻔하잖아요. 신랑 월급은 빚 갚느라 차압 당해요. 분유 값도 모자라요.”

여성 근로자

이 드라마는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을 리메이크한 것인데요. 아사히신문은 비정규직 여성의 조산(早産) 가능성이 정규직이나 전업 주부의 두 배가 넘는다고 후생노동성의 통계를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비정규직은 수입 감소와 해고 우려 때문에, 복부 통증이 오더라도 휴가를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습니다.

<직장의 신>에서는 승진에서 계속 밀렸지만 월급은 비정규직의 4배를 받는 50대 과장이 권고사직의 위기에 놓입니다. 정규직 후배들은 권고사직을 막으려 애쓰지만, 미스 김이 협조적이지 않자 이렇게 묻습니다.

“회사에서 내쳐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잖아요?”

김혜수는 답합니다.
“알죠, 그게 얼마나 큰 공포인지 아픔인지… 근데 팀장님, 그거 아십니까? 그 공포를 계약직들은 6개월 혹은 3개월마다 겪습니다. 정규직 선배 자리보전을 위해 계약직 몇 명이 교체 되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시간제 근로자

지난해 봄 서울을 방문한 OECD의 수석경제학자 폴 스와임은 한국사회 통합의 핵심과제로 ‘비정규직 축소’를 권고했습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근로소득의 불평등과 고용불안을 가져온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근로의욕을 높여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고 임금격차 축소로 소득형평성이 개선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고용하려는 유인을 줄이고, 정규직의 고용보호 수준을 낮추고 비정규직의 일자리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그로부터 14개월 뒤, 팽목항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했고 3백여 명이 숨졌습니다. 폴 스와임의 충고는 방향은 옳았지만, 안전보다 성장을 중시하고 비정규직을 늘린 정책이 대형인명사고로 이어질 것을 내다보지는 못했습니다. 세월호 승무원 29명 중 절반이 넘는 15명이 계약직이었고, 선장 역할을 맡았던 사람 역시 월 270만원 짜리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신문

세계 3대 신문 중 하나로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세월호 참사로 한국의 안전결핍증이 노출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해운사는 지난해 직원들 안전교육에 쓴 비용이 54만원에 불과했으며, 직원 대다수가 임시직이어서 안전교육을 시킬 동기가 부족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어 ‘한국의 임시직 비율이 OECD 평균의 약 2배인 24%에 달하고, 청해진해운의 상황이 전반적인 한국사회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지난 4월, 런던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한 지인은 “영국 사람들이 ‘한국 배에서는 선장이 먼저 탈출한다면서요?’라고 비아냥대서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된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교통, 안전과 관련된 종사자들의 정규직화를 강제화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움직임은 바람직해 보입니다. 이에 앞서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를 드라마에서 정면으로 제기한 ‘직장의 신’ 제작진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직장의 신’ 제작진은 절대 다수가 비정규직 스태프들이었습니다. 한 제작 관계자는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단단한 동지애로 뭉쳐있고, 드라마 주인공 슈퍼갑 미스김처럼 당당한 비정규직이다’라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세월호 침몰 당시 끝까지 승객들을 구하다 숨진 故 박지영 씨 역시 비정규직 승무원이었습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세월호 사고 원인이 비정규직 문제라기 보다는 직업의 소명의식 문제’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하기도 했는데요. 타인의 목숨을 구하다 의롭게 숨진 의사자로 지정된 박지영 씨의 영정사진에서 직장의 신 ‘미스김’의 얼굴이 살며시 오버랩되는 것은 저만의 착시현상일까요?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형준 프로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 시시각각 변화하며 새롭게 부각되는 세계 속 숨은 이슈와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냉철한 시각으로 담아내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시각의 메시지를 전하고픈 세상 돋보기의 안형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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