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속 세상돋보기] #12. ‘의리’의 진화심리학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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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속 세상돋보기] #12. ‘의리’의 진화심리학

작성일2014-07-18

“홍명보 감독님과 23인의 태극전사에게는 국민 모두의 ‘의리’가 있습니다. 부디 자신보다 팀을 생각하는 ‘의리’와 투혼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대한민국이여 일어나라!”

지난 6월, 의리의 대명사로 떠오른 배우 김보성 씨가 러시아전을 앞두고 보낸 응원메시지입니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의 흥행 돌풍 이후, 의리와 우정이 사회심리의 대세가 된 것은 매우 오랜만입니다. 남해 제법 깊은 바다 한가운데, 검은 튜브 한 개에 매달려 버티는 네 명의 소년들. “바다거북과 조오련 중 누가 더 빠를까?” 걸쭉한 사투리로 확인된 우정은 수십 년을 이어가게 되죠.

우정은 인간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한 생물학자(Wilkinson)의 연구에 따르면, 낮에 숨어 지내다 밤에 소와 말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박쥐에게도 우정으로 보이는 나눔이 있습니다. 어린 박쥐들은 말과 소의 꼬리를 피하느라 실패할 확률이 33%에 이른다는데요. 대부분의 흡혈박쥐들이 빨아먹은 피의 일부를 게워내 다른 박쥐에게 나줘 주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피를 나눠주는 박쥐끼리는 ‘하루의 60% 이상을 같이 보내는 친구 사이’라는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우정’이란 ‘현재 제공한 편익이 미래에 보답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이뤄지는 상호적 이타성’이라는 주장입니다. 서로의 생존확률을 높여줄 수 있다는 것인데요. 원시시대의 인간도 사냥한 짐승의 고기를 넣을 냉장고가 없었던 만큼, 우정과 의리로 나눴다는 설명도 가능합니다.

의리

 

 

영화 <친구>에서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대사와 함께 숨진 장동건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유오성은 피할 수 있었던 기나긴 옥살이를 스스로 선택합니다. <친구2>는 유오성이
17년의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데요. 유오성은 숨진 장동건의 아들(김우빈)과 힘을 합쳐 배신자(?)들을 무찌르고 부산지역의 조폭 세계를 접수합니다. 영화 두 편에서 면면히 흐르는 부산 사나이들의 우정에 대해 ‘수컷들의 폭력과 배타적 동맹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우정과 의리’는 ‘부산 접수의 수단일 뿐’이라는 시각인 것이죠.

수컷들의 동맹과 조직적인 폭력은 인간 외에는 침팬지에게서 발견됐습니다. 네덜란드 아른험의 동물원에서 늙은 수컷 우두머리가 젊은 수컷에게 밀려나자 더 젊은 수컷과 연대해서 다시 지배에 참여하는 과정이 생물학자들에게 관찰됐습니다. 늙은 수컷의 짝짓기 지분율은 최고 75%에서 0% 까지 떨어졌다가 어린 수컷과의 연대 이후 25%까지 회복됐습니다. 침팬지의 사회생활은 수컷끼리의 동맹뿐만 아니라, 암컷들과의 동맹도 중요해서 암컷의 털을 골라주거나 새끼들과 놀아주는 경우가 자주 관찰됩니다.

의리

860만의 관객을 동원한 <친구>에서 장동건과 유오성의 우정에 금이 가는 계기는 여학생의 등장이었습니다. 근처 여학교 밴드부인 ‘레인보우’의 보컬 진숙은 모든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고,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집니다. 이 와중에 유오성은 모범생 상택의 마음을 읽고 진숙과 친해질 기회를 마련해줍니다. 하지만 진숙을 맘에 품은 장동건은 화장실에서 유오성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그 유명한 대사를 날립니다. “내가 니 시다발이가?”

살인사건 가해자의 남녀 비율을 잠시 살펴볼까요? 1965년~1980년 사이에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86%는 남성이 저지른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케냐의 졸루오족 살인사건은 94%를 남자가 저질렀고, 스코틀랜드는 93%였습니다. 살인범은 남성 중에서도 부유한 기혼 남성에 비해, 가난한 미혼 남성의 살인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비교문화학자들은 ‘여성에게 접근하려는 남성간의 경쟁이 위험한 전략을 선택하게 하며, 어느 정도는 오랫동안 유지돼온 일부다처제의 산물로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일본에서는 ‘친구를 빌려드립니다’라는 용역 서비스가 인기를 끌고 있고, 지난해 공중파에 방송된 학교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서는 ‘각박한 세상에 우정은 사치일 뿐’이라는 대사까지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심리학자들은 ‘여전히 우정이 번식과 생존을 위한 효율적 전략’이라고 주장합니다. ‘나를 배신하지 않을 의리 있는 친구 고르는 방법’도 소개하는데요. 먼저 ‘여러분을 소모품이 아니라 대체가 불가능한 존재로 여기는 친구를 선택하라’고 충고합니다. 두 번째로는 ‘여러분의 마음을 잘 읽거나, 같은 것을 원하는 친구를 선택하라’고 충고합니다. 취미나 취향이 같아야 서로 도울 기회가 많아진다는 설명입니다. 세 번째로는 ‘긍정적인 외부 효과를 일으키는 친구를 선택하라’고 권합니다. 뛰어나게 건장한 체격이나 사냥능력, 외국어 등을 잘하는 친구가 있으면, 강도를 피하고 장사에 도움을 받는 등 부수적인 혜택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현대인의 고독은 과거와는 달리, 진정한 친구를 구별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들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언젠가 한 번쯤은 위기상황을 설정해, 주변 친구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안형준 프로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 시시각각 변화하며 새롭게 부각되는 세계 속 숨은 이슈와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냉철한 시각으로 담아내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시각의 메시지를 전하고픈 세상 돋보기의 안형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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