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89.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가벼움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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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89.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가벼움

작성일201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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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에서건 섣불리 넘볼 수 없는 존재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달인(達人)’, ‘장인(匠人)’이라 일컫습니다.

초밥, 좋아하십니까.

50대 중년의 이 남자. 초밥 빚어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나 봅니다. 서울 시내 유명 호텔에서 일식(日食) 조리장으로 이름깨나 날렸습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일터를 그만둡니다. 사표를 내고 사라집니다. 이 사람의 솜씨를 익히 알고 있던 다른 유명 호텔들이 스카웃에 나섰지요. 일식당 셰프로 모시기 위해서.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아냈지만 이 사람은 죄다 거절하고 아예 종적을 감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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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참 뒤, 초밥 명인의 ‘존재’는 서울이 아닌 지방인 걸로 밝혀집니다. 경기도 이천에. 잘 나가던 시절 있었고, 스카웃에 응하면 더 잘 나갈 수도 있었음직한 것들 모두 마다하고 굳이 지방행을 택한 연유는 그 스스로 입을 다물어 알지 못합니다. 지금 그는 자그마한 회전초밥집 주인입니다.

그 솜씨만큼은 여전해 작은 가게가 늘 북적입니다. “여기 시골에 있는 게 이상하고 아까울 정도”라는 게 오가는 손님들의 중평(衆評)입니다. 그 사연이 무엇이건 초밥 잘하는 가게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이쯤 되면, 그만의 철학이 무언지 궁금해지기 마련입니다.

“까불지 말자.”

전혀 뜻밖의 소신(所信)이라 되레 낯설기까지 했습니다. 그 정도 솜씨면, 생선 고르는 안목부터 칼질, 초밥용 밥 만들기, 초밥 싸기 등등을 아우르는 대가(大家)다운 목소리가 일반적이지 싶은데, “까불지 말자”라니…
“음식 좀 만들 줄 안다고 인정받으면 그때부턴 기교 부리고 겉멋 내는데, 그건 아니다.”
초밥계 셰프들이 하나같이 대가로 인정하는 이 사람의 ‘기본’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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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좋아하십니까.

75세 노년의 여주인. 가게는 서울 강남의 잠원동에 있습니다. 주변 건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야말로 허름한 분식집입니다. 주위 건물과 너무도 동떨어진 행색이라 구청에서 몇 번이고 리모델링을 권유했음직한 그런 가게지만 입맛 까다로운 강남 주민들이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찾는 곳입니다.

손님들은 한목소리로 “국물이 끝내줘요~” 합니다. 간식으로서 떡볶이의 본질은 떡과, 볶음에 들어가는 양념, 그것들의 어울림일 텐데 ‘국물’이라니… 남들이 뭐라 하건 이 여인은 떡볶이 그릇에 흥건하게 담아내는 국물, 그 맛을 찾고 만드느라 수십 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그녀만의 레시피로 중독성 강한 국물 떡볶이가 완성되고, 이제는 어디 부럽지 않은 자기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장성한 딸에 이어 며느리까지 가업을 잇겠노라 함께 손을 거들 정도로.

이쯤 되면, 그만의 철학이 무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성!”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배었을 그녀만의 땀과 눈물, 그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낸 ‘레시피’에 관한 언급이 아닌 게 뜨악했습니다. ‘정성’이라…

“값싼 떡볶이라고 대충 만들면 진짜 값어치 없는 것이 될 뿐이다.”
먼저 갖춰야 할 것은, 그리고 변하지 않고 지켜가야 할 것은 정성이라는 마음가짐이라 했습니다. 그녀의 ‘기본’ 또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었습니다.

너무 당연하기에 되레 소홀히 여기는 것, 지극히 마땅하기에 그 중요성을 흘려버리기 쉬운 것, 기본입니다. 기본은 모든 남다름의 시작이자 핵심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가벼움처럼 흩뿌려지기도 하는 기본을 다시 생각합니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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