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속 세상돋보기] #15. ‘개콘(개그콘서트)’의 풍자 사회학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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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속 세상돋보기] #15. ‘개콘(개그콘서트)’의 풍자 사회학

작성일2014-11-28

자~ 오늘도 자극적으로 가보자! 악녀로 변신!”
제작사 대표의 외침에 여주인공이 바로 물을 상대방에게 뿌립니다.

 지난해 봄부터 올해 여름까지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에서 16개월 동안 방영된 장수 코너 ‘시청률의 제왕’의 대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중국의 한 위성TV가 지난 9월 첫선을 보인 공개코미디 프로그램 ‘이치 라이 샤오바(모두 함께 웃어요)’가 개콘을 표절한 것입니다.

KBS는 “타사 프로그램의 형식과 내용을 베끼는 걸 넘어 코너 제목까지 그대로 갖다 쓰는 건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희미한 중국의 방송에서도 그 예를 찾기 힘든 일”이라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메인 뉴스에서는 ‘시청률의 제왕’과 세트, 대본까지 똑같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중국 방송은 이미 막을 내린 개콘의 다른 인기 장수 코너도 표절해 녹화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GAG CONCERT

1999년 시작한 공개코미디 개콘은 15년째 우리나라 개그프로그램의 왕좌를 지켜왔습니다. 세 번이나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예능프로그램에 선정됐고, 인기 유행어는 언론 기사의 제목으로 자주 인용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유행어를 만든 개그맨들은 CF스타로 급부상하며 부와 인기를 동시에 거머쥐었습니다.

평균 15개 안팎인 개콘의 코너를 살펴보면, 시사프로나 뉴스에서 다룰 아이템을 선택해 풍자하고 희화화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 빈부격차와 공교육 문제, 새로운 트렌드 등 분야도 다양합니다.

실천은 하지 않고 탁상공론만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기억하십니까? “고~뤠?”, “안돼~!”같은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넌 어떤 여자가 이상형이야?” “성형한 여자” “왜?” “성형을 했다는 건 돈이 있다는 뜻이잖아” 이 대사를 기억하십니까? 운동복을 입은 두 젊은이가 글러브를 낀 채 야구공을 주고 받으며 청년실업의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던 ‘오성과 한음’입니다.

빈부격차나 계층갈등을 조명한 아이템들은 ‘정여사’나 ‘거지의 품격’으로 이어지다 최근에는 ‘억수로’에서 일반인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부호의 생활을 다소 비현실적으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거지의 품격’은 빈곤층인 거지가 중산층 여성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을 묘사해 ‘계층 통합’이라는 거대 담론을 건드리기도 했습니다. 한때 “궁금하면 500원”이란 대사는 술자리에서도 자주 등장하며, 소통의 윤활유 역할을 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개콘의 최장수 코너인 ‘봉숭아학당’은 학창시절의 추억과 공교육의 문제점을 웃음의 미학으로 버무려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공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갸류상~”으로 히트를 친 ‘멘붕스쿨’에 이어 ‘닭치고’가 현실에서 한발 더 물러나 웃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두 분 토론’과 ‘현대레알사전’으로 이어지던 남녀대결 성격의 코너는 진화를 거듭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여성의 위상과 사회적 진출이 신장된 트렌드를 반영해, 여사원들에게 둘러싸인 남성 신입사원의 애환을 다룬 ‘나 혼자 남자다’와 여성 우위의 연애 실태를 코믹터치한 ‘연애능력평가’가 인기를 얻었습니다.

신앙인 옷차림으로 강한 디스와 풍자로 통쾌함을 선사해온 코너 ‘멘탈갑’이 두 달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버스 한 번 타봐라. 시민들 버스카드에서는 ‘잔액이 모자랍니다’라고 나오는데, 댁들 카드에선 ‘생각이 부족합니다’라고 나올 것이다” 광역버스 입석금지 정책을 졸속 시행한 공무원들을 비판한 ‘멘탈갑’의 대사입니다.

한 문화평론가는 “중국이 일부 코너는 표절해도, ‘사마귀 유치원’이나 ‘용감한 녀석들’ 같은 정치풍자 성격이 강한 코너는 표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중국 당국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개콘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도 있습니다. 뉴욕타임스 특파원은 “한국은 똑같은 미모와 동안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얼굴색이 어둡거나 얼굴형이 남다르면 코미디언들의 개그 소재가 된다”고 꼬집었습니다. NYT 보도 뒤, 공영방송 개그프로의 코너들을 살펴보니 사실에 가까웠습니다. MBC ‘코미디의 길’은 10개 코너 가운데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등 2개가, 개콘은 16개 중 ‘선배 선배’, ‘취해서 온 그대’ 등 5개가 외모 비하를 웃음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살에 대해 말하지 않기(End Fat Talk)’ 캠페인이 시작되는 등 외모에 대해 말하지 않는 움직임과 방송정책이 시작됐는데요. 그래서인지 순수한 풋사랑을 다룬 ‘두근두근’이나 월급쟁이들의 애환을 다룬 ‘렛잇비(Let It Be)’ 같은 서정적인 코너들이 새로 등장하면서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열여섯 살 개콘이 사춘기를 벗어나 제대로 성장하길 기대해봅니다.

안형준 프로필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 시시각각 변화하며 새롭게 부각되는 세계 속 숨은 이슈와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냉철한 시각으로 담아내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시각의 메시지를 전하고픈 세상 돋보기의 안형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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