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96. 어른이 된다는 건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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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96. 어른이 된다는 건

작성일2017-05-10

“어른 셋이 걸어가고 있으면 그 가운데 스승 한 명이 있다.”
딱히 정확한 옮김은 아니지만 옛 말씀 중에 이런 격언이 있음을 기억합니다.

세상살이를 어느 정도 감당한 나이가 되면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웬만큼 깨우치게 되고,
그 중에서도 타의 모범이랄까 본보기가 되는 사람도 생겨난다 – 대충 이런 맥락으로 이해되는 말입니다.

‘어른’이라는 존재에 대한 가치 존중, 어른으로서의 책임감, 무게감 등을 더불어 강조한 말이라는 느낌도 듭니다. 또 이만한 의미를 갖는 게 바로 어른이니, 그들 가운데에는 다른 어른들을 가르치고 이끌 만한 위상을 갖춘 ‘어른 위의 어른’, 즉 ‘스승’이 있는 게 마땅하다는 세상 이치를 지적한 말 같기도 합니다.

모름지기 이 같은 옛말이 만들어지던 그 시절은 그랬었나 보다 짐작만 할 뿐입니다.
정작 현실은 어떤가요.
지금도 어른 셋이 모이면 그 가운데 ‘스승’이 있기 마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스승은커녕 ‘스승 깜’이라도.
그마저 둘째 치고, ‘어른’은 어떤가요.

세명의 백발의 노인이 서로를 보며 웃고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을 일컫는 것일까요.
나이 스물 되어 성년식을 치렀다 해서 선뜻 ‘어른’이라 하진 않습니다.
이때부터 ‘어른의 길’에 들어섰다고 여기는 게 사회통념입니다.
나이 스물, 서른, 마흔, 쉰…
그 이상의 나이까지도 뭉뚱거려 다 어른이긴 합니다.
정작 우리가 말하는 어른은 생물학적인 나이듦보다는 ‘어른다움’에 더 방점을 둡니다.
그래서 나이 더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어른답다, 그렇지 못하다” 하게 됩니다.

먹고 살기 바쁘고, 제 몸 하나 추스르기조차 만만치 않은 세상.
이 마당에  “어른다움은 뉘집 양념에 쓰려고?” 하는 자조(自嘲) 섞인 푸념도 마냥 무리는 아닙니다.
어찌 보면 대개의 일들이 그런 대로 ‘잘 돌아갈’ 때는 되레 이 같은 ‘어른 타령’이 한가로울 수 있습니다.
고단하고 팍팍하고, 숨 막힐듯 답답한 일들이 주위에서 일상처럼 펼쳐질 때 차라리 더 절실해집니다.
지친 발걸음 끌며 끝을 알 수 없는 밤길을 가다, 저 너머에서 비치는 한 줄기 불빛을 보고서 희망을 찾듯…

흰수염과 흰머리를 가진 남성이 젊은 여성을 등에 업고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를 더 먹는 게 아니라 ‘어른다움’을 갖추는 일입니다.
‘어른다움’은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나잇값’을 하는 것입니다.
‘나잇값’은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쌓이는 퇴적물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의미 있는 가치’입니다.

어린새싹부터 나뭇잎의 늙어서 시들어가는 과정을 한번에 나열해서 보여주는 사진
러디어드 키플링이라는 미국 작가는 자신의 시(詩)에서 어른이 되기 위한 의미 있는 가치를 이렇게 읊조렸습니다.

“네가 기다릴 수 있고 또한 기다림에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거짓이 들리더라도 거짓과 타협하지 않으며
미움을 받더라도 그 미움에 지지 않을 수 있다면
네가 꿈을 갖더라도 그 꿈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네가 어떤 생각을 갖더라도 그 생각이 유일한 목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면
인생의 길에서 성공과 실패의 길을 만나더라도
그 두 가지를 똑같은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네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1분간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60초로 대신할 수 있다면”

 

 ※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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