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링을 위한 힐링] #90. ‘나’를 보다. ‘주위’를 살피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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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링을 위한 힐링] #90. ‘나’를 보다. ‘주위’를 살피다

작성일2017-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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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문제는 내 몸 안에 있더라고요. 고통도 슬픔도 내 몸을 통해 풀어야 비로소 온전히 나아요…
오랜 방황 끝에 알았어요. 내가 내 몸을 써서 내 안으로 파고들어야 비로소 낫는다는 걸…”

“우물을 파듯 내 몸에 집중했더니, 비로소 목을 감고 있던 끈이 느슨해지는 경험을 하게 됐어요.
명상 끝에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고요.
내가 누구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틀을 버리면 자유로워져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무엇을 해도 편안하죠. 이젠 비로소 자유롭습니다.”

— 배우 문숙 : 영화감독 고 이만희 씨의 <삼포 가는 길>(1975년) 주연을 맡으며 주목 받음. 23년 연상의 이만희 감독과 결혼한 지 몇 개월 만에 사별(死別). 이후 몸과 마음의 지독한 상처와 극심한 고통으로 방황, 미국으로 이주. 자연치유식, 요가, 명상으로 치유. 최근 귀국해 활동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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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하는 사람을 봐라. 보기만 해도 어지럽다. 그렇게 곡예를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자기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중심의 힘을 뺏기면 넘어지고, 뺏기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그 중심은 바로 ‘자기 마음의 주인공’이다 …
주인공이 어디에 있겠나. 우리 안에 진작부터 있는 거다. 자기가 잊어버려서 그렇지.”

“외줄타기 하는 사람에게 뭐가 제일 중요하겠나. 자기 발 얹어놓은 바로 그 자리, 거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 자리가 없으면 떨어져 죽으니까. 그게 어딘가. 바로 ‘지금 여기’다.
그럼 행복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각자의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 성파 스님 : 통도사 수좌이자 조계종 원로회원. 해인사 <팔만대장경> 양면을 흙으로 똑같이 구워 반영구적 보존 상태로 만드는 작업을 10년에 걸쳐 진행, 완수. 다방면에 걸쳐 우리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활동을 펼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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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순조롭게 되는 사람들은 ‘열심히 하면 못 살 이유가 어디 있나’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을러서 어려움에 처한 게 아니라,
어려움이 계속되기 때문에 그 어려움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삶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 한봉금 원장 : 한봉금 씨의 공식 직함은 <엘린호텔> 원장. <엘린호텔>은 중증 지적장애인과 사회복지사가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제주도 소재 호텔. 정부 사업비로 이 호텔을 매입, 제주도가 소유주이며, 복지재단이 운영을 하는 독특한 사업체. 한봉금 원장은 여기 직원으로서 운영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 또한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어머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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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리아킴의 노래 중에 <위대한 약속>이란 게 있어요. 이 노래 가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위급한 순간에 내 편이 있다는 건 내겐 마음의 위안이 되고’라는…
이게 바로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해줘야 할 일이라고 강조하고 싶어요.”

— 오종남 위원장 : 대통령 재정경제비서관, 통계청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새만금위원회 민간위원장으로 있다. 최근, 출신 고교인 광주고 동문회장을 맡고서, 사회에서 자리 잡은 선배들이 재학생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사랑의 가교’ 프로젝트를 시작. 형식적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멘토/멘티 활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에 눈에 띈 몇 사례를 추려본 것입니다.
‘나’를 직시(直視)하고, ‘주위’를 살펴보는 일.
나만을 바라보고 주위를 기웃거리는 것과는 엄연히 격이 다릅니다.
둘 중에 어느 하나일지라도, 생각만큼 만만하지도 손쉽지도 않을 법합니다.
그래도 마음먹고 하려든다면 ‘먼 일’도 아님을 위의 사람들이 웅변하고 있다 싶네요.

※ 외부 필진 칼럼은 본 블로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상상 프로필

대기업 사보편집자로 사회생활을 시작, 좋은 선배와 동료들 덕분에 이 일에 재미를 들여 커뮤니케이션 업무 분야에서 오롯이 15년을 일했다. 지금은 잡지 등에 자유기고가로 글을 쓰며 그간의 경험과 이력을 반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