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는 남자] #2. 81년생 전찬훈, ’82년생 김지영’을 만나다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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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하는 남자] #2. 81년생 전찬훈, ’82년생 김지영’을 만나다

작성일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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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중, 남고, 공대를 졸업했다. 전형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를 경험했지만 그래도 여자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났고 공감하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그리고 나의 아내를 생각하니 가슴 한 켠이 먹먹해져 왔다.

《82년생 김지영》 표지 (이미지 출처: 민음사)

《82년생 김지영》표지 (이미지 출처: 민음사)

그동안 내가 만난 82년생 김지영들

이 책을 통해 평범한 대한민국 여성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 여자로서 겪는 고충이 이 정도로 큰 것인지 그 전에는 알지 못했다.

주인공은 ‘경력단절을 감수하며 아이를 키우는 일에 몰입하는 평범한 주부’로 등장하는데 정신적인 건강의 문제가 터지면서 그녀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된다. 어릴 때 겪은 남아선호의 문화, 좋아하는 남성이 쫓아오다가 화를 내며 돌아갔던 일, 직장 내 성폭력, “내가 가정을 책임질 테니 회사를 관두어도 된다”는 남편의 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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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주변에 산재되어 있는 이런 일들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가슴에 새겨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동시에 남성 중심의 집단에서 “에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일들이 그 동안 참 많았겠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육아휴직을 통해서 평범한 여성의 일상을 겪고 있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아내를 잘 알고 있다고, 잘 이해한다”고 여전히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을지 모른다. 솔직히 말해 뭐든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온전히 상대방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멘붕의 연속, 전업주부로서의 삶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한 주례사를 보았다. 그 중에 “가사는 남편이 돕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이 있었다. 작은 차이지만 그 접근 방식이 상대방에게는 정말 크게 다가온다.

나도 육아휴직을 하기 전에는 ‘나름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육아도 열심히 참여하는 것 같은데 왜 아내는 늘 불만일까?’라고만 생각했다.

‘나 정도면 잘 도와주는 남편인데… 전업주부, 그까이꺼 똑 소리 나게 1년 동안 보여주겠어!’ 이런 마음으로 육아휴직을 시작했지만,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은행에 다니는 아내는 퇴근이 늦기 일쑤였다. 일찍 오겠다고 이야기하여 저녁 준비를 해놓았는데 갑자기 늦는 경우, 야근하는 아내가 고생한다는 생각보다 늦게 퇴근하는 아내가 야속했다. 홀로 아들 둘 저녁을 먹이느라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나면 내 모습이 쓸쓸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아프면 어린이집 찬스도 모두 무산된다.

아이들이 아프면 ‘어린이집 찬스’도 무산된다.

뿐만 아니라 아내 출근 소리에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다시 재우고, 또 일어나면 아침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는 매일 아침은 정말 멘붕의 연속이었다.

뭔가 필요해서 아내에게 톡을 보내도 답장은 한참 후에나 받을 수 있었다. 커피를 좋아해서 가끔 쉬고 싶은 마음에 아이들과 카페를 가면 주변 사람들에게 혹 불편을 끼칠까 늘 걱정이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진 빠지는 일상을 3년이나 견뎌내 준 아내에게 미안했다. 정말 몰랐다.

지독한 미세먼지로 아침마다 준비해야 할 것이 꽤 많다.

지독한 미세먼지로 아침마다 준비해야 할 것이 꽤 많다.

생각해보면 육아휴직 이전에 난 육아를 ‘함께하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일을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비로소 내가 그 처지가 되고 나서야 왜 아내가 나를 섭섭해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아내에게 건네자 아내는 “난 3년이나 이렇게 했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회사에 복직해서 치열한 경쟁과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그 동안 남편도 고생 많았어. 그래도 육아가 제일 힘들긴 하지”라며 나를 위로했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이 되고 나서 더 큰 동료애가 생기는 듯했다. 더 솔직한 표현은 전우애라고 해야 하나…

아이의 울음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아이의 울음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나뿐 아니라 많은 남자가 육아휴직을 경험했으면 한다

사실 1년의 육아의 경험을 통해서, 그리고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고 아내와 많은 감정을 공유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상대방의 삶의 일부를 알았을 뿐이다.

여전히 여성의 삶 속에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는지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다. 여성이 결혼이나 출산 이후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사회생활 중에, 심지어 데이트 중에도 예기치 못한 폭력에 얼마나 노출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고충을 가지고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다. 내가 직접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에 대해 더 많은 부분을 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해하는 것을 넘어 직접 그 사람이 되어 동일한 아픔과 고난을 받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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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 아니라 많은 남자가 육아휴직을 경험해 보았으면 한다.

서로의 입장으로 삶을 살아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육아뿐만 아니라 사회의 많은 문제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함께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해결의 시작이다.

전찬훈 프로필

LG전자 뉴비지니스센터(New Business Center)에서 신사업을 개발합니다. 두 아들의 아버지이며 현재 좌우충돌 육아휴직 중입니다. 세상의 어두운 곳을 밝히는 빛과 같은 LG를 꿈꾸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