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떠나는 힐링여행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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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 떠나는 힐링여행

작성일2012-08-07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선암사」

안녕하세요? LG 블로거 날카로운 불꽃 임희수입니다.

본격적인 휴가철입니다. 모두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멋진 휴가를 보내기 위해 준비 많이 하고 계시죠?  하지만 모처럼의 휴식을 즐기면서도 ‘진짜 휴식’의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도 요즘은 많이 계십니다. 하루하루 쉬며 몸의 피로는 어느새 조금씩 해소되어가는데, 어쩐지 안달복달하는 마음은 휴가 전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죠. 지금의 우리는 쉬는 동안에도 무언의 업무 성과를 강요 받고 있고 그러다 보니 휴가 중에도 편히 우리 마음의 상태를 들여다 볼 여유가 없습니다. 쉬는 동안에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해야 하고, 하루라도 더 빨리 남들과 다른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쉬는 동안에도 이렇게 마음이 소란하니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마음의 휴식은 단순히 일상을 멈추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소리와 오롯이 마주하는 고요 속에서 비로소 가능한데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번 휴가에 조금 특별한 여행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바로 “시와 함께 떠나는 여행”입니다. 진정한 ‘휴식’을 위해서 한 권의 시집과 함께 마음의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언제든 어디서든 우리는 시집 한 권만 있으면 강으로, 바다로, 그리고 산으로 우리 마음과 만나는 여행을 떠날 수 있습니다. 이번 포스팅을 통해 강, 바다, 산을 주제로 한 세 편의 시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시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통해 작은 마음의 위로를 얻으실 수 있길 기대합니다.

강으로 떠나는 힐링여행

섬진강5 (삶)
김용택

이 세상
우리 사는 일이
저물 일 하나 없이
팍팍할 때
저무는 강변으로 가
이 세상을 실어오고 실어가는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팍팍한 마음 한끝을
저무는 강물에 적셔
풀어 보낼 일이다.
버릴 것 다 버리고
버릴 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어둑거리는 강물에
가물가물 살아나
밤 깊어질수록
그리움만 남아 빛나는
별들같이 눈떠 있고,
짜내도 짜내도
기름기 하나 없는
짧은 심지 하나
강 깊은 데 박고
날릴 불티 하나 없이
새벽같이 버티는
마을 등불 몇 등같이
이 세상을 실어오고 실어가는
새벽 강물에
눈곱을 닦으며,
우리 이렇게
그리운 눈동자로 살아
이 땅에 빚진
착한 목숨 하나로
우리 서 있을 일이다.

갈대늪

이 시는 시인 김용택이 1985년에 출간한 시집 『섬진강』에 실린 섬진강 20편 중 다섯 번째 시입니다. 시인은 조상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 온 섬진강변의 조그만 농촌 마을을 초등학교 교사로(2008년 퇴임하셨습니다) 시인으로 살아가며, 묵묵히 땅을 일구며 이름 없이 살아 온 우리 이웃의 삶을 섬진강의 굳세고 든든한 모습으로 형상화해 「섬진강」이라는 이름의 연작시로 노래해 왔습니다. 사실 같은 제목의 다른 시에서는 지역 방언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소박하고 고단한 농촌의 현실을 고발하듯 강하게 이야기하기도 하는데요, 이 시에선 그 이웃들을, 또는 아름다운 고향을 읽어버린 사람들을 위로하듯 따듯한 언어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연의 모두가 우리에게 위로를 주지만 강물만큼 시각적인 위로를 주는 존재는 많지 않은 듯 합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 지금의 힘겨운 시간도 강물처럼 흘러가리라는 믿음이 절로 생겨납니다. 힘든 순간의 위로를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팍팍한 마음 한끝을/저무는 강물에 적셔/풀어 보낼 일”입니다. 그러면 “착한 목숨 하나로 서 있을”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다로 떠나는 힐링여행

와온 바다
곽재구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
당신의 슬픈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다
구부정한 허리의 인간이 개펄 위를 기어와 낡고 해진 해의 발바닥을 주무른다
달은 이곳에 와
첫 치마폭을 푼다
은목서 향기 가득한 치마폭 안에 마을의 주황색 불빛이 있다
등이 하얀 거북 두마리가 불빛과 불빛 사이로 난 길을
리어카를 밀며 느릿느릿 올라간다
인간은
해와 달이 빚은 알이다
알은 알을 사랑하고
꽃과 바람과 별을 사랑하고
삼백예순날
개펄 위에 펼쳐진 그리운 노동과 음악
새벽이면
아홉마리의 순금빛 용이
인간의 마을과 바다를 껴안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곽재구 시인과의 만남은 학창시절「사평역에서」라는 시를 읽고 공부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시에서 쓴 “막차는 좀처럼 오지않았다”라는 첫 문장은, 시인이 시를 통해 아무것도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눈 앞에 한편의 서사를 그려놓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실제로 이 시를 바탕으로「사평역에서」라는 동명의 소설이 씌여지기도 했지요. 좁은 간이역의 풍경을 통해 삶의 고단함을 보여주었던 시인은 이젠 넓게 펼쳐진 순천의 와온(臥溫) 바다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따듯하게 누운(臥溫) 바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슬픈 이야기를 털어놓고 잠시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산으로 떠나는 힐링여행

상처4
마종기

소나무 숲길을 지나다
솔잎내 유독 강한 나무를 찾으니
둥치에 깊은 상처를 가진 나무였네.
속내를 내보이는 소나무에서만
싱싱한 육신의 진정을 볼 수 있었네.
부서진 것 가려주고 덮어주는 체액으로
뼈를 붙이고 살을 이어 치유하는지
지난날 피맺힌 사연의 나무들만
이름과 신분을 하나 감추지 않네.
나무가 나무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네.
나도 상처를 받기 전까지는
그림자에 몸 가리고 태연한 척 살았었네.
소나무가 그 냄새만으로 우리에게 오듯
나도 낯선 피를 흘리고 나서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네.
우리들의 두려움이 숲으로 돌아가네.

마종기 시인은 의사 출신 시인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시인입니다. 방사선과 의사로 오랜 시간 근무하며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살펴보는 일을 해와서 인지, ‘상처’에 관심을 가지고 연시를 써 내시기도 했습니다. 시인은 유독 ‘피’의 이미지를 많이 사용해 고통받는 인간의 외로움을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이 시에서 사용된 “솔잎내 유독 강한 나무를 찾으니/ 둥치에 깊은 상처를 가진 나무였네”라는 표현이 마음에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솔잎내 유독 강한 나무”가 마치 마음 속의 상처를 감추려 센 척 해 보이려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해서는 아닐까요? 이 시가 실린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라는 시집에서 시인은 이런 외로운 우리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은, “외로움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는, 그리움을 통해 그리움을 깨우는 목소리”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상처를 받고 외로움에 침잠하지만, 결국 그 상처를 치유하고 새롭게 일어날 힘은 같은 상처를 서로 지닌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의미이겠지요.

이 글을 쓰기 위해 마종기 시인의 시집을 꺼내들었다가, 오랜 친구가 시집 표지에 써 준 시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렇다. 내 시를 읽어준 친구들아. 나는 아직도 작고 아름다운 것에 애 태우고 좋은 시에 온 마음을 주는 자를 으뜸가는 인간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다.”             – 마종기 「시인의 말」 중에서

더운 날, 시를 사랑하는 ‘멍청이’가 전해드린 좋은 시를 통해, 잠시나마 작고 아름다운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셔서 마음이 시원해지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해봅니다. 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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