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민의 선셋라이프] #2. 아들 셋 다둥이 아빠의 육아일기 “유학생 아빠, 직장인 아빠” – 일본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아이와 먹고, 살고, 놀기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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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의 선셋라이프] #2. 아들 셋 다둥이 아빠의 육아일기 “유학생 아빠, 직장인 아빠” – 일본 유학 시절 기숙사에서 아이와 먹고, 살고, 놀기

작성일2015-05-08

안녕하세요. LG 블로거 김강민입니다.
지난 글을 통해 세 명의 아들, Son 셋과 함께하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 선셋라이프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선셋라이프 김강민

가족이 다섯 명이 되기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요. 돌이켜 보면 변화도 참 많았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정 환경의 가장 큰 변수였던 유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저의 신분 변화와 함께 우리 가족의 생활이 달라졌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지극히 우리 가족만의 이야기입니다.)

막내 첫돌 기념 가족사진

막내 첫돌 기념 가족사진

■ 食(먹을 식)

생각해 보니 결혼 생활 중 절반은 학생이었네요. 첫째가 14개월이던 해에, 당시 세 명이던 우리 가족은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적어도 5년은 지나야 돌아올 수 있는 아빠의 대학원 일본 유학 길을 함께 떠난 것이지요. 다행히 학비와 함께 일정 생활비를 장학금으로 지원 받게 되어 일본 유학을 떠날 엄두는 낼 수 있었지만,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부족한 생활비였고, 불확실한 졸업 후의 상황도 생각해야 하니 추가적인 비용은 최소한으로 하며 아르바이트도 병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공부하면서 세 가족이 생활한다는 것은 정말 녹록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알뜰하게 할 수 밖에 없었고, 둘째가 태어난 후에도 달랑 사과 하나 배 하나를 가지고 네 명이 나누어 먹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생활은 소박했습니다. 한번은, 마지막 남은 단감 한 조각을 아내가 먹은 일로 언성을 높여 밤 늦도록 싸웠던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어? 모성애가 있기는 해?”
“나도 사람이야. 좀 먹고 살자.”
요즘 말로 참 웃픈 기억입니다. 가족을 생활고의 수렁으로 빠트린 가장이 도리어 큰 소리를 치다니요. 평생 반성하면서 살 일입니다.

유학 시절, '특별한 날'의 과일상

유학 시절, ‘특별한 날’의 과일상

졸업을 하자 마자 귀국을 했고, 겨우 3일을 쉬고 지금의 직장인 LG CNS로 출근을 했습니다. 공부하느라 지친 자신, 그리고 함께 해준 가족들을 위해 한 달 정도, 아니 일주일이라도 휴식의 시간을 갖고 싶었으나, 하루라도 돈을 더 버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현실이었지요. 슈퍼맨이 변신하듯, 캐주얼에서 정장으로 갈아 입은 저는 순식간에 직장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 겨울 귤을 무려 한 ‘박스’나 샀습니다. 둘째의 친구들이 놀러 왔을 때였지요.
“엄마, 나 귤 몇 개 먹어요?”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돼.”
“와! 엄마가 귤 두 개 먹어도 되고 다섯 개 먹어도 된대!”

아직도 과일이나 간식을 먹을 때 마다 종종 생각나는 일화인데요. 아이들이 풍족하지 못한 시기를 겪은 만큼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은 감사하고 미안한 일입니다.

■ 住(살 주)

집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일본 유학 첫 해에 살았던 곳은 방이 2개인 아파트 형태의 기숙사였습니다. 세 식구가 살기에 공간도 적당하고 집세도 거의 무료였으니 불안정한 첫 해의 보금자리로는 더할 나위 없었지요. 하지만 원칙상 한 해 밖에 살 수 없었고, 그 곳을 떠나고 난 뒤에는 통학에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에 있는 10평 남짓한 복층 단독 주택 형태의 기숙사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일본의 집이 원래 좁은 편이긴 하지만, 10평을 아래위로 나누다 보니 한 층이 겨우 5평 밖에 되지 않았지요. 1층에는 주방 겸 거실과 욕실이 있고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져 있는 2층은 방인, 좁을 뿐만 아니라 아기가 있는 가족이 살기에는 불편하고 위험한 구조의 집이었지요. 하지만 집 값은 비교적 쌌으니 3년을 살았습니다. 복층집에 산다고 하니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남들에게만 로망일 뿐, 우리 집은 여름에는 2층이 찜질방이요, 겨울에는 1층이 얼음방이었으니 네 식구가 철철이 잠자리를 아래위로 옮겨가며 좁은 공간에서 살을 맞대고 지냈습니다.

복층형 기숙사 1층

복층형 기숙사 1층

복층형 기숙사 2층

복층형 기숙사 2층

졸업을 1년 반 정도 남긴 시점이 되어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제 학위를 받기 위해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데 매일 길에서 버리는 긴 시간이 너무 아까웠던 것이죠. 그리고, 힘든 환경에서 생활한 아내와 아이들은 마음에 그림자가 생겨 더 이상 버티기는 힘든 상황이었지요.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하기로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11평 정도의 긴 사각형인 원룸이었습니다. 면적은 비슷하지만 집이 한 층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군요. 높은 서랍장과 커튼을 사용해서 방을 반으로 나누어 창 쪽은 침실, 복도 쪽은 거실로 썼습니다. 학교에서 15분 거리에 있어, 아이들 유치원 행사며 병원 진료며 필요할 때면 다녀갈 수가 있으니 아빠 역할을 하는 데 있어서도 큰 변화가 있었지요.

 

‘단층 원룸’이라는 신세계

‘좁은 복층집’에 살던 사람의 눈에 비친 ‘단층 원룸’이라는 신세계

침실과 거실의 경계가 된 수납장과 커튼

침실과 거실의 경계가 된 수납장과 커튼

귀국하고 나서는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집도 넓어졌고 공간 구성도 좋으니 살기가 참 편하지요. 그런데 요즘도 가끔씩 이야기합니다.
“그 때 그 원룸 참 좋았는데.”
객관적으로 공간 자체는 좋아졌지만, 11평 원룸에서 느꼈던 소박한 행복함, 안락함은 그 때만 누릴 수 있었던 공간감이 아닐까 합니다.

『풍요로움은 상대적인 것이다.』

■ 遊(놀 유)

귀국한 후 2년이 지나 막내가 태어났는데요. 형들에 비하면 처음부터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지요. 하지만 힘들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더 많았던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쉽다는 것이 이기적인 아빠의 마음입니다. 비싼 돈 들여 가는 테마파크도 좋지만, 한 여름이면 주말마다 땀 뻘뻘 흘려가며 곤충 채집통 한 가득 메뚜기를 잡았던 집 근처 풀밭이 더 기억에 남는 놀이터였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놀이

일본의 집 근처 풀밭에서 메뚜기 잡는 첫째와 숨죽이고 있는 둘째

날씨 좋은 봄이네요. 특별할 것 없이 그냥 넓고 넓은 풀밭에 뛰고 구르며 놀러 나가봐야겠습니다. 어려웠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았고, 사소한 즐거움에도 크게 웃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아이들에게 이 곳에서의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 주려고요. 마지막으로 제가 일본 유학 생활 하던 중에 썼던 시 한 편으로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
우산까지 받쳐들고
남들이 쏘아 둔
작은 총알을 찾아
풀 사이를 샅샅이 뒤진다.

총도 가지지 않았지만
색색의 총알이
모일 수록
아이의 기쁨은 커져간다.

어디에 쓸 목적도 없이
값을 따짐도 없이
그것이 아이에겐 보물이기에
하나만 더 찾으려고
이리로 저리로
마음이 바쁘다.

2010. 7. 11 일본의 아파트 마당에서

김강민 프로필

컨설턴트로서 LG의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LG의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 에너지 관련 기술 트렌드를 주요 테마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