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민의 선셋라이프] #4. 아빠의 출장지로 떠난 가족 여행 – LG그룹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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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민의 선셋라이프] #4. 아빠의 출장지로 떠난 가족 여행

작성일2015-12-07 오후 5:43

아들 셋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선셋라이프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한 서울 근교 당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조금 더 길게, 멀리 가보려고 합니다.

선셋라이프 김강민

아이들에게 아빠란? 회사란?

뜬금없지만,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아빠와 회사라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경력 11년의 아빠이지만 저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자주 하게 되는데요. 아이들에게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요? 동일 인물을 지칭하지만 무언가 느낌이 다른 ‘아버지’와 비교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두 호칭의 사용 기준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같이 노는’ 친구에서 ‘같이 늙어 가는’ 친구로 바뀌는 변화의 정도를 호칭으로 바꾸면 ‘아빠’와 ‘아버지’의 차이이지 않을까 마음대로 생각해 봅니다. 아빠 같이 놀자. 아버지 한잔해요. 예를 들자면 이런 느낌일까요? 11살, 8살, 3살인 아들 셋에게 아빠는 같이 놀고 싶은 친구이고, 그만큼 함께 할 시간이 많이 필요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러면 회사는? 틈만 나면 아빠를 데려가서 놀아주지 못하게 하는 존재일 테지요. 주말에도 데려갈 때는 얄밉기도 할 것이고요. 회사에서 아빠에게 월급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포기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긴 합니다. 아무튼 아이들에게 회사는 아빠를 사이에 둔 연적(戀敵)과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얄밉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자꾸만 궁금한 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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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연적을 만난 둘째

아빠의 출장지가 여수라고? 가자, 여수로!

직업이 컨설턴트인 저는 프로젝트 단위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에 따라서는 출장을 가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출장의 종류도 지방 출장, 해외 출장, 짧은 출장, 긴 출장으로 다양합니다. 작년 가을, 저는 또 출장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긴 지방 출장, 두 달 동안 여수로 출장을 떠나게 된 것이었지요. 평일에는 여수에서, 주말에는 서울 집에서 지냈는데요. 예전에 두 달 간의 미국 출장에 비하면 훨씬 나았지만, 그래도 평일에 떨어져 지낸다는 것은 가족들에게나 저에게나 걱정이 앞서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좋은 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수에 잘 곳이 생긴 것이죠. 장기 출장이다 보니 제가 구한 숙소가 바로 원룸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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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출장지를 여행의 목적지로 둔갑시키는 기발한 아이디어. 어떻게 보면 평일의 아빠를 통째로 회사에 빌려준 것에 대한 보상을 스스로 찾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아이들 사이에선 여수 여행을 언제 가느냐가 아빠의 출장이 언제 시작되느냐보다 더 중요한 화두가 된 듯 했습니다. 드디어 출장이 시작된 주. 금요일에 일을 마치고 비행기로 서울 도착. 집에 돌아 오니 벌써 저녁입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 마음에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금 가자. 여행이란 거, 미루다가 언제 갈지 몰라.”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데 출발 예상 시간이 저녁 8시 반.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짐이 5인분. 잠시 막막합니다. 하지만 이미 마음 먹었으니 거칠 것 없습니다.

‘할까 말까 고민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

여수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가 넘었습니다. 한 밤의 드라이브에 막내는 이미 차에서 숙박 중이고, 형들은 처음 와 본 여수, 말로만 듣던 아빠의 아담한 집에 신이 나 눈이 말똥말똥합니다. 오늘은 여수에 온 것 만으로도 성공이라고 기뻐하며, 내일의 여행을 위해 서둘러 잠을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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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여행 중 잠든 막내

색다른 바다의 기억 ‘향일암’

첫날 우리가 향한 곳은 돌산읍의 ‘향일암(向日岩)’이었습니다. ‘해를 향한 암자’라는 뜻의 향일암은 이름만큼이나 일출 광경이 장관이라고 하는데요.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자는 애들 들쳐 업고 해돋이를 만끽하기는 어렵고, 애 셋과 함께 외출 한번 하려면 준비하는 데 3차 대전은 기본이니 해지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입니다.

향일함으로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주차장까지 차로 이동한 후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는데, 건어물 가게들이 늘어선 포장된 길이 끝나면 돌계단과 가벼운 등산로 느낌의 비포장 도로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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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함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둘째와 셋째는 이미 지친 기색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아이들이 지칠까 걱정도 되고 급할 것도 없으니 쉬엄쉬엄 올라갔습니다. 멈춰 서서 소원 돌탑을 쌓기도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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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에서 소원 돌탑 쌓기

그렇게 걷다가 만나는 큰 바위 틈으로 만들어진 석문을 통과하니 법당이 나타납니다. 바로 향일암입니다. 아들 셋, 대견하게 잘 걸어 올라왔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향일암에 오르는 길에는 7개의 바위 동굴과 바위틈이 있고, 모두 통과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는데, 애들 챙기며 오르다 보니 안타깝게도 몇 개를 통과했는지 기억이 안 납니다. 올해 집안에 좋은 일이 많았으니 다 통과한 셈 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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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틈에서 네 남자가 함께

‘암자는 돌산도 끝자락 금오산의 기암괴석 절벽에 세워졌다. 산의 형상이 마치 거북이가 경전을 등에 지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쇠 금(金), 큰바다거북 오(鰲)를 써서 금오산이라고 불린다. 향일암에 남해를 향해 엎드려 있는 돌거북 장식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출처: 섬과 골목에서 느끼는 여수의 속살, 연합뉴스, 2015.5.14)

향일암 곳곳에는 돌거북으로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그 모양 자체도 신기하여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막내는 그 위에 얹혀 있는 동전에 관심이 많더군요. 소원 성취의 염원을 담아 돈을 얹지는 못할 망정 남의 염원을 훔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슬금슬금 다가가는 손을 말리느라 바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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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거북 머리 위의 동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막내

바위틈 곳곳에도 동전이 놓여 있는데요. 엄마와 첫째도 동전을 얹으며 일확 천금을 꿈꿔 본 것 같습니다. 만약 소원 성취의 확률이 향일암에 놓아 둔 동전의 총액에 비례한다면, 향일암에 오를 때에는 동전을 두둑이 챙겨 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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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와 거북이 바라보고 있는 바다

금오산의 절벽에 바다를 향하여 자리를 잡은 만큼 향일암 곳곳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전통 건축물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 낯설지만 편안한 풍경을 앞에 두고 잠시 머리 속을 비워 보았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지금껏 보아 온 해변과는 다른 바다의 풍경이 기억에 남았기를 바랐습니다.

여행길에 만난 놀이터 ‘소율마을’

향일암에서 내려와 다시 육지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을 차로 달리다 보니 바닷가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들이 어촌 마을을 구경해 본 적이 없고 바쁠 것도 없으니 잠시 들렸다 가기로 합니다.

골목길을 지나 바닷가로 가니 작은 항구가 있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야외 휴식 공간에 운동 기구와 그네가 있습니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놀이터가 반가워 달려갑니다. 역시, 그림 같은 풍경 보다는 재미나게 놀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더 좋은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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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향해 오르는 그네

그네를 타고 높이 오를 수록 바다가 가까워집니다.
이런 풍경을 눈에 담을 기회가 자주 있을까요?

항구 근처에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그물을 손질하고 계십니다. 일을 하고 계시지만 그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궁금한 막내가 다가가 말을 건네니 할머니는 그을린 얼굴에 웃음을 가득 채워 화답을 합니다. 결혼해서 육지로 떠난 딸과 함께 명절에 찾아 온 손자를 보셨다면 저런 얼굴이시겠지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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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손질하는 어르신들과 막내

몽돌에 내린 석양 ‘무슬목 해변’

육지로 향하는 길에 또 한 곳이 눈에 띄어 차를 세웠습니다. 전남 해양수산과학관. 공부도 되겠다 싶어 한번 둘러보고 갈까 했지요. 그런데 차를 내리니 둘째가 작은 일이 급한 모양입니다. 과학관은 입장권이 있어야 들어가니 급한 김에 건물 바깥의 화장실을 찾아 봅니다. 아들을 키우면서 좋은 점 중 하나가, 급할 때는 풀밭, 나무 상관 없이 가까운 자연이 화장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뭐든 찾아서 건물 뒤로 돌아 가니 이게 왠일인가요? 몽돌 해변이 펼쳐져 있습니다. 무슬목해수욕장이더군요.

‘지식아 미안하다. 노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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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놀이에 몰두하고 있는 첫째와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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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지는 바다를 향해 소리쳐 보는 둘째와 파도가 무서워 그림 보듯 바다를 감상 중인 막내

몽돌 해변이 처음인 아이들은 바닷가에서의 새로운 재미를 느낀 것 같습니다. 돌과 돌 사이를 건너 뛰어 보기도 하고, 어디에선가 긴 막대를 주워 둘이서 바닷물을 찔러 보기도 하고. 언뜻 보기에는 과연 무엇이 재미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아무튼 이제 돌아가자는 말에 몇 번을 거절합니다.

제멋대로 여행 후기

더 많은 곳을 다녀왔고, 보고 느낀 것도 많지만 지면의 제약(?) 상 이번 여행 이야기는 뜬금 없는 후기와 함께 마치려고 합니다.

여행에 있어서 여정은 너무 구체적이지 않는 편이 좋은 것 같습니다. 조목조목 정해 놓으면, 어딘가로 향하는 길에 우연히 만날 풍경과 인연을 놓쳐버릴 것 같아서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 각자에게 가장 좋은 추억거리는 제각각 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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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바다에 발도장을 찍음

더욱이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의 목적이 어떤 곳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면, 길을 가다 멈춰 서고, 잠시 쉬다 다시 길을 떠나는 여유는 꼭 챙겨야 할 준비물인 것 같습니다.

좋은 여행을 마칠 때면 다음에 꼭 또 오자는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 달이라는 짧지 않은 출장이었지만, 일 때문에 머문 곳이다 보니 가족들이 두 번 오기는 쉽지 않았지요. 결국 그 때가 아니었다면 한 번도 못 올 뻔 한 채로 출장도 끝이 났습니다.

다음에는 또 어떤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김강민 프로필

컨설턴트로서 LG그룹의 미래를 고민하고 준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LG의 건축물에 얽힌 이야기, 에너지 관련 기술 트렌드를 주요 테마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