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거리에 핀 예술의 꽃, 문래창작촌 – LG 공식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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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공거리에 핀 예술의 꽃, 문래창작촌

작성일2014-08-22

안녕하세요, LG블로거 김동찬입니다.

여름 휴가, 잘 다녀오셨나요? 지구본을 돌려봐야지만 찍을 수 있는 곳을 다녀오셨는지요? 아니면 전국지도를 펼쳐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을 즐기고 오셨나요? 혹시 아직 여름 휴가를 다녀오지 않으셨다면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매일 지나치는 그곳을 조용히 주의 깊게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요?

문래동

동네에서 시작된 어떤 여행

저의 올여름 휴가는 조금 특별했습니다. 김대욱의 여행에세이 <숨, 쉴틈>을 읽고 난 후 시작한 여행길이었는데요. 여행을 간다고 하면 친구들은 으레 어느 나라로 가는지를 제일 처음 물어보고 비행기를 안 탄다고 하면 산인지, 바다인지, 어느 도시인지 유명 지역을 하나씩 떠올리며 물어보곤 합니다.

문래동

문래동

하지만 여행, 꼭 거창할 필요가 있나요? 꼭 표가 있어야 하고, 커다란 가방을 둘러메야만 그것이 여행인가요? 작가 김대욱이 떠나는 여행의 출발점은 자신의 방이었습니다. 내가 수십 년간 살아왔던 방. 내 체취가 묻어있는 방. 눈을 감아도 불을 켤 수 있으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는 방. 그곳에서부터 작가의 여행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가 수없이 걸었던 골목길을 다시 한 번 걷습니다. 저의 이번 여행길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문래동, 예술을 품다

2001년 겨울, 처음 마주친 문래동. 지금은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지하철 2호선 ‘문래역’은 플랫폼부터 음침했습니다. 이사한 아파트는 단지 새로 지어진 것뿐이라는 이유로 동네의 외딴 섬처럼 보였습니다. 20층 아래로 내려다본 앞 동네는 온통 조그만 철공소들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때렸고, 뒷동네는 거대한 공장과 들락날락하는 트럭으로 인해 뿌연 먼지가 시야를 가렸으며, 청과물 도매상점이 길 옆으로 늘어선 옆 동네는 여름이면 악취가 진동하는 동네였습니다.

문래동

10여 년 전만해도 지인들에게 문래동에 산다고 이야기를 하면 거기가 어딘지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연기를 내뿜던 붉은 벽돌공장이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듯한 오피스텔로, 화려한 쇼핑몰로, 차분한 주상복합건물로 바뀌어 수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비어있던 공터에도 하나둘 건물들이 올라갈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철공공장 지역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의 공기는 아직도 쇳가루를 머금고 있고 바닥은 철이 산화되어 만들어진 붉은 색으로 변했으며 거대한 가마에서는 지금도 강한 불꽃이 열기를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죽은 철에 예술이라는 생명의 온기가 입혀지면서 가장 크게 변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사실을.

철공거리에서 문래창작촌으로

문래동 철공거리, 이제는 문래창작촌으로 더 잘 알려진 이곳에 예술가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으로 기억합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했을 때는 낮에도 걸어 다니기 쉽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30년도 더 지난 것 같은 건물은 쓰러질 것만 같았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2, 3층의 뿌연 창 안쪽에는 귀신이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특히 해가 진 이후는 스릴러 영화의 단골무대로 비춰질만한 장소로, 웬만한 담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걸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문래동

문래동

그랬던 이 동네가 2008년쯤부터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옆 공장의 가림막에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건물 곳곳의 옥상에서 사람들이 영화를 보거나 파티를 하곤 했습니다. 2010년이 지나면서 문래역에 문래창작촌에서 열리는 공연과 전시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플리마켓(flea market)까지 열렸습니다. 주말에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던 이곳에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누군가의 설명을 들으며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는 무리도 볼 수 있습니다.

문래동 골목

예술가들이 문래 철공거리에 터를 잡은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00년을 기점으로 홍대 지역의 임대료는 하늘 높이 치솟았고 예술가들은 조금 더 임대료가 저렴한 서교동, 합정동, 연희동 등지의 주변으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들에도 관광객이 모이면서 임대료가 오르자 힘없는 예술가들은 프랜차이즈 상점들에게 그들이 닦아 놓은 터전을 또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반해 문래동 철공거리는 홍대와 가까우면서도 임대료는 바로 100m 옆 동네에 비해 현저하게 낮았죠. 또 1층에서 울리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지저분하고 관리가 안된 건물은 예술가들에게 거대한 스케치북이 되었습니다. 예술가들은 페인트가 벗겨진 벽에 형형색색의 옷을 입혔고, 쓰레기 더미였던 옥상에 텃밭을 일구었으며 거리 곳곳에 조형물을 만들어 골목에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문래동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합니다. 이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10년이면 문화도 변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예술가들끼리 만든 이 커뮤니티는 이제 동네 주민들을 위해 한 걸음 더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것 같습니다. 공연과 전시로 시작된 공간은 그림 수업, 핸드백 만들기, 나무공예와 우크렐레 강습 등 자신의 재능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방법으로 요즘 또 한 번의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문래동

문래동

홍대앞, 가로수길 등 인디밴드와 예술가들이 만들어 놓은 독특한 문화 공간은 몇 년만 지나면 대형 프랜차이즈 집합소로 바뀌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지만 문래예술촌은 철공거리라는 강력한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이런 걱정으로부터 벗어나 보여 안심이 됩니다. 철공거리에 둥지를 튼 예술가들의 혼이 이곳에서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고, 또 지켜주겠습니다.

문래동

김동찬 프로필

LG생활건강 기술연구소에서 화장품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많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